-
-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박웅현, 강창래 지음 / 알마 / 2009년 8월
평점 :
"어쩌면 제가 제일기획의 지진아였을 때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통찰력을 키워나가지 않았다면, 영어 공부는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토익 시험을 봐두지 않았다면, 첫 번째 프레젠테이션을 통과하기 위해 그처럼 노력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겠지요. 그런데 저는 '준비'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해본 적은 거의 없어요. 프레젠테이션이야 딱 잡힌 일이었으니 준비했지만, 제가 가진 문화적인 갈증이 독서와 음악, 미술, 영화로 이끌었던 것이고 영어 공부는 <타임>지 같은 새로운 문화의 접점을 잃고 싶지 않아서 계속했을 따름입니다. 토익 시험 보러 갈 때도 따로 특별히 공부하고 간 것은 아닙니다. 그저 기회가 있으면 영어 사전이나 영문을 들여다보았을 뿐이고, 일요일에 잠깐 가서 시험 보는 일 자체가 공부가 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p.255)
출판계의 불황으로 인해 문을 닫는 인쇄소가 늘어나는 바람에 좋아하는 만화가가 올해 처음으로 다이어리를 제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출판계가 어렵다고 말들 해도, 그런 말을 듣는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닌 데다가 꾸준히 (그것도 제법 많이) 책을 사서 읽는 나로서는 영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런 불상사가 생기고 보니 이러다가 큰일나겠다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책에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플랫폼이 바뀔 뿐이라고 말하지만, 세 매체를 모두 애용하고 있는 내 생각은 다르다. 책에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과 구별되는 나름의 매력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따라잡을 수가 없다. 내가 라디오와 종이신문, 테이프와 CD를 기억하는(기억할)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책을 읽는 사람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만 다루는 사람과 차별되는 강점을 가지며, 독서 인구가 줄어들수록 이들의 가치는 점점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의 주인공 박웅현도 내 입장에 공감할 것이다. 박웅현은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등의 카피를 제작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 등 베스트셀러 저자다. 인터뷰어 강창래가 그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된 이 책에서 그는 똑똑하고 창의적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만 모인 광고계에서 최고가 된 비결로 주저없이 '책읽기'를 든다. 잘난 동기에게 밀려 찬밥 신세였던 사회초년생 시절에 그는 김충렬, 신일철, 김용옥 등 철학자들의 책에 심취했고, 공들여 준비한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탈락하고 좌절해있던 때에는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원서를 몇 달에 걸쳐 읽었다. 최고의 광고인으로 인정받은 지금도 박경리의 <토지>를 '한 첩의 보약을 먹듯' 읽고, 밀란 쿤데라와 카뮈의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겸허한 마음이 드는 한편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긍지를 느꼈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이는 책 읽어서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고 빈정대며, 트렌드에 한참 뒤처진다고 멸시하기도 한다. 이제까지는 반박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 속을 끓였지만 앞으로는 박웅현의 이름을 댈 것이다. 책을 밥과 쌀로 바꾸었고, 오래된 책에서 얻은 지혜로 가장 트렌디하고 핫한 광고를 만든 박웅현이야말로 이 시대가 원하고, 책 안 읽는 사람들도 수긍할 만한 독서가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박웅현 개인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광고를 비롯한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전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담겨있고, 카피 제작 기법이라든가 창의성을 개발하는 방법 등 구체적인 팁도 나와있다. 나처럼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외에도 이 분야에 관심있는 많은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