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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연애수업 - 31편의 명작 소설이 말하는 사랑과 연애의 모든 것
잭 머니건.모라 켈리 지음, 최민우 옮김 / 오브제 / 2013년 9월
평점 :
우리 중 일부, 그러니까 핍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예민한 나머지 낭만적인 집착으로 내달리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이 충분히 고급스럽지 않아서, 학벌이 충분치 않아서, 매력이 충분치 않아서, 충분히 똑똑하지 않아서, 충분히 성공하지 못해서, 혹은 이들 전부로 인한 분노에 끊임없이 고통당하는 존재다. 우리는 귀인 - 핍에게는 에스텔라가 그렇듯- 이 언젠가 우리의 특별한 점을 발견하여, 우리가 무능하고 불편하며 소외된 존재라는 느낌을 없애준 뒤 마침내 이 세상에 편히 발붙일 수 있게 해줄 거라고 자신을 설득하면서 고통을 달랜다. 그러나 우리가 이를테면 유부남이거나, 당신에게 무관심하다는 등의 이유로 인해 맺어질 수 없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우리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리가 실제로는 행복이나 사랑을 얻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사랑이 이뤄지는 게 절대 불가능한 상황으로 자신을 밀어넣기 때문이다. (pp.36-7)
서평을 즐겨 쓰다보니 남이 쓴 서평집도 찾아서 읽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이 책은 한 손 안에 들만큼 괜찮았다.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비롯한 서양의 고전 문학과 연애 상담을 결합한, 퍽 재미있는 형식의 책이다. 고전이든 현대물이든, 장르가 무엇이든, 작가의 국적이 어디든 간에 대부분의 문학 작품에 러브 스토리가 등장하는데, 왜 이제까지 여기에 주목한 사람이 없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아니 그것보다도 왜 내가 더 먼저 주목하지 못했을까?).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니라, 연애상담 칼럼니스트 모라 켈리와 연애와 성 관련 에세이스트 잭 머니건, 이렇게 두 남녀가 함께 쓴 책이기 때문에 연애와 성, 결혼 등 같은 문제에 대해 남성과 여성이 각각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을 많이 안 읽었다, 고전 문학을 잘 모른다 하는 사람도 남녀 문제에는 대체로(라기 보다는 아마도 99.99999%) 관심이 있을테니 두 저자의 연애상담에만 주의를 기울여도 읽을만 할 것이다(나도 이 책에 소개된 고전 중 제대로 읽은 건 다섯 편밖에 안 된다).
같은 여자라서 그런지, 나는 잭보다도 모라의 글에 더 공감이 갔다. 모라는 <벨 자>, <위대한 유산>, <제인 에어>, <위대한 개츠비>, 심지어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같은 고전 중의 고전을 통해 '나 좋다는 남자가 싫은 까닭은 무엇일까', '이상형이 한 남자의 일생에 미친 해악', '열정에 원칙을 적용하는 게 왜 바보짓일까', '남자가 끈질긴 건 기쁜 일일까, 징그러운 일일까', '때로 문제는 당신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있다' 등 여자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안줏거리로 오를 만한 질문과 답을 재치있게 제시했다. 특히 나는 <위대한 유산>의 남자 주인공 핍을 통해 이뤄지기 어려운 사랑일수록 더욱 빠져드는 모순과, E.M.포스터의 <하워즈 엔드>를 통해 정치적 성향이 다른 남자와 함께 사는 법에 대한 대목이 좋았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들 중에는 - 재테크 책을 많이 읽는다고 다 재테크를 잘하는 건 아닌 것처럼 - 책 따로 현실 따로인 경우가 종종 있는데(나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책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책으로 쓰는 - 선순환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을 책으로 배웠다는 그네들처럼, 나도 내가 읽은 책 속에서 아무리 해도 어려운 사랑의 해답을 찾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