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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잡초야 - 야생초 편지 두 번째 이야기 ㅣ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글.그림 / 도솔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예전에 MBC '느낌표!' 라는 인기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코너는 소개된 책이 전부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도 그 중 한 권이다. 우리집에서도 이 책이 방송에 소개되자마자 구입해서 식구들이 돌아가며 읽었다. 특히 어머니가 좋아하셨다. 풀이 귀한 감옥에서 길바닥에 난 잡초를 뜯어먹으며 행복을 느끼던 저자의 모습이 퍽 감동적이셨던 모양이다.
<야생초 편지>의 두 번째 이야기 격인 책이 나왔다고 해서 이번에도 식구들과 같이 읽었다. 제목은 <고맙다 잡초야>. 그간 무얼 했나 궁금했는데, 출소 후 저자는 전라도 산속에서 생활해 왔다고 한다. 나체로 지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퍽 깊은 산속이란다. 가끔 강연을 하러 산속에서 나올 때도 있지만, 도시에 잠깐 머물렀을 뿐인데도 병이 날 만큼 산속 생활에 길들여지셨다고 한다. 산속 생활에 대체 어떤 마력이 있길래 이렇게 철저히 길들여지신 걸까, 하고 봤더니, 산속에서는 밥을 지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잠을 자는 아주 단순한 일조차도 깊은 의미를 가지게 된단다. 심지어는 '여문 똥이 내 몸에서 나와 끊어지지 않은 채로 땅과 연결되는 순간에는 가벼운 황홀감마저 느껴졌'다고 스스럼없이(!) 고백할 만큼 산속 생활은 짜릿한 맛이 있단다. 몇 푼 벌겠다고 죄없는 나무를 베는 탐욕스런 인간들, 저 자신의 근심과 걱정을 지우기 위해 생태계를 위협하는 사람들 때문에 속이 상할 때도 있지만, 자연과 합일되어,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는 편안함 때문에 저자는 산속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념과 철학, 경제와 가족 관계 등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 더 불행해졌다고 느끼고 있던 이 여인은 어느 날 토마토케첩 한 병을 만들기 위해 하루 낮을 소진하다가 문득 여기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한다. 지금 이 당에도 수많은 귀농인들이 있지만 어찌 이런 일이 미국에만 국한된 일일까. 단 돈 몇천 원이면 마트에 가서 한 순간에 끝낼 일을 며칠을 두고 고민하고 노력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현실을 '즐겁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귀농은 결국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밖에 없다. 산업화 이전에는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먹고사는 게 으레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은 마음에 그어놓은 경계선만 살짝 넘으면 얼마든지 '편한' 삶이 가능한 시대인지라 특별한 철학이나 의지가 없으면 끊임없는 갈등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pp.208-9)
산속 생활에 대한 글 외에도 최근의 환경 문제, 생태 문제, 농업 문제에 대한 진지한 글도 많다. 제재는 다르지만, 모든 것을 경제 원리로 환원하는 현대사회와, 산업화, 근대화에 예속된 상태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현대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은 어느 글에서나 엿볼 수 있다. 경제학 전공자로서 한때는 나도 경제 원리를 신봉하다시피 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경제 원리의 효율성, 합리성은 여전히 인정하지만, 인간의 필요와 미의식에 맞추어 무분별하게 자연이 파괴되는 작금의 상황은 '착취'나 마찬가지이고, 이에 대해서는 경제 원리와 무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겸손하게 살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 그래서 더 거룩하고 경건하게 보이는 것 같다. 부럽고, 결코 쉽지 않겠지만, 닮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