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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평점 :
"나는 밤 열두 시에 태어났는데 여자아이를 순산했다는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이 그때부터 밤새 머리를 맞대고 옥편을 찾아가며 지으신 이름이 내 이름이라는 거였다. 그 후 다시는 내 이름에 대한 불평을 안 하게 되었다. 불평은커녕 새 생명을 좋은 이름으로 축복해주려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을 두 남자, 점잖고 엄하기로 집안에서뿐 아니라 마을에서도 알아주는 상투 튼 할아버지와 젊은 아버지를 떠올리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존중받고 사랑받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pp.61-2)"
'작가는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2011년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박완서의 미발표 소설과 산문이 수록된 신간 <노란 집>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성에서 몇 십리 떨어진 벽촌에서 보낸 어린시절과 전쟁으로 인해 못 다 핀 젊음을 속으로 삭혀야 했던 청년시절에 이르는 멀지 않은 지난날의 이야기부터 외환위기 직후의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와 밀레니엄을 앞두고 들뜬 사람들의 모습, 디지털 문명과 물질 만능주의, 소비주의가 만연해 자연과 사람 사이의 정 같은 중요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 오늘날의 이야기까지, 반세기가 넘는 시대상을 작가의 온 감각으로 체화해 이야기로 담았으니 그릇같지 않은가.
박완서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당시 분위기와는 다르게 여자아이인데도 집안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받으며 자랐다. 저자처럼 나도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셨다. 그것도 한 달 넘게 성명책을 공부하고 연구해서 말이다. 게다가 여자아이는 돌림자를 쓰는 경우가 드물고, 내 항렬의 돌림자가 남자아이 이름에 더 많이 쓰이는 자인데도, 아버지는 아들 못지않게 대접받고 남자처럼 성공하며 살라는 의미로 일부러 돌림자를 넣어주셨다. 워낙 말씀이 없는 분이라서 이마저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었지만, 지금 내 나이보다 겨우 한두살 많았을 젊은 아버지가 처음 태어난 딸의 이름을 짓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었을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다. 저자도 비슷한 기분이지 않았을까?
따뜻한 가정에서 보호받고 지냈던 건 그 때뿐, 얼마 후 저자는 서울로 유학을 가 시골내기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기도 했고, 일제 점령기 막바지의 극심한 가난과 사회적 혼란에 시달리기도 했고, 전쟁의 포화 속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사회가 조금 안정된 이후에는 다섯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바쁜 생활을 하느라 심심해지는 것이 소원인 때도 있었고, 남편과 아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는 불상사도 있었다. 그 모든 시련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자신은 축복받고 사랑받으며 태어났다는,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들꽃 한포기, 앞마당의 낙우송, 나뭇가지에 잃어버린 열쇠를 걸어놓은 이웃의 마음씨, 반짝이는 실개천에 발을 담그고 노는 손주들, 무청 우거지 된장찌개의 맛, 오랜만에 찾은 백화점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 짹짹거리며 등교하는 아이들 같은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에 일일이 감탄하고 감동을 받는 모습은 그래서 더 아름답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