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자본 - 매력을 무기로 성공을 이룬 사람들
캐서린 하킴 지음, 이현주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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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애 여성의 비장의 무기인 매력 자본과 출산은 사실상 짓밟히고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쓸모없을 뿐 아니라 불충하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선언된다. 그 결과로 여성은 더욱 더 나약해진다. 희생자 페미니즘은 여성의 무력함을 키운다. 자신이 겪는 모든 어려움이 사회나 문화, 남자들 때문이라고 탓하는 행위는 여성을 수동적인 상태로 살게 하고 자신의 삶과 결과, 변화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도록 조장한다." (p.120)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섹슈얼리티에서도 모든 것의 가치를 결정한다.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공급이 지나쳐 가치가 전혀 없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여성은 성욕에 의해 그렇게까지 내몰리지 않기 때문에 남성의 에로틱 파워는 여성의 매력 자본보다 가치가 낮다. (중략) 여성의 성적 관심이 적다는 일반적인 사실은 성적 협상과 사적인 관계에서 여성에게 유리한 입장을 제공한다. 남성은 대부분 결혼이 자신의 섹스 결핍에 영구적이고 완벽한 해결책을 제공해 주리라고 생각하지만 결혼 뒤에도 협상은 오래도록 계속된다." (pp.284-5) 



요즘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보면 하나같이 예쁘고 잘생겼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직업 전선에 뛰어든 그네들이 마냥 좋아보이는 건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똑똑한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지식을 팔아 돈을 벌고, 발빠른 아이가 운동선수가 되어 돈을 버는 게 당연한 것처럼, 또래보다 월등히 예쁘고 잘생긴 외모를 일찌감치 재능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팔아 돈을 버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생각도 든다. 



<매력자본>을 쓴 영국의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 역시 비슷한 주장을 한다. 저자는 경제 자본, 인적 자본, 사회적 자본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매력 역시 '매력 자본'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인간의 매력을 자본화한다는 것이 언뜻 듣기에는 비인간적이고 외모지상주의적인 느낌이 들지만,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니 대체로 수긍이 되었다. 개인의 가치가 매력자본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학 시절, 한창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있던 모 레스토랑 겸 카페는 외모만 보고 아르바이트생을 뽑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돈보다도 자신의 외모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보기 위해 그곳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지원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는데, 대부분이 떨어지고 아나운서 지망생이던 여자 후배 한 명이 당당히(!) 합격해서 한동안 어깨를 쭉 펴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지원했다면 떨어졌을 게 분명한 나는 이런 관행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외모도 하나의 자본이라면 외모가 준수한 사람에게는 외모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차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우스운 건 내가 받는 외모차별은 비난하면서 다른 사람은 외모로 차별하는 사람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연기나 노래를 빼어나게 잘하는데 무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연예인이 다수인데, 실력은 없으면서 아름다운 외모를 무기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사는 연예인은 영웅시되는 세태가 그렇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저자가 매력자본을 담론화한 것은 페미니즘과 관계가 깊다. 저자는 페미니즘 중에서도 급진적인 성향의 페미니즘이 여성 고유의 매력을 비하하고 여성성을 부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가부장제와 다를 것이 없어졌다고 비판한다. "내가 보기에 급진적인 페미니즘은 여성의 매력을 하찮게 여기는, 가부장제와 비슷한 생각을 채택함으로써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p.12) 급진적인 페미니즘의 문제점 중 하나는 '아름다움 아니면 두뇌 중에 선택해야 하고 그 모두를 가질 수는 없다'는 식의 제로섬 게임식 사고다. 영화 <금발이 너무해>가 꼬집었듯이, 지금까지도 사회에는 예쁜 여자는 멍청하다, 똑똑한 여자는 못생겼다는 식의 편견이 있다. 이런 편견은 여자들로 하여금 예쁜 여자를 멍청하다고 멸시하면서 자신은 멍청해 보이지 않기 위해 아름다운 외모를 포기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 여성의 매력자본이 여성이 남성에게 예속되어있다는 증거라는 주장 역시 문제다. 저자는 여성이 매력자본을 개발하는 것은 그저 남자에게 잘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나 독서, 운동, 자기계발 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활동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여성만 매력자본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역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활동으로서 매력자본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높다.

 

 

남녀 모두 매력자본을 활용할 수 있지만 매력자본을 활용했을 때의 이득은 남성보다 여성의 경우가 훨씬 더 크다. 이는 남녀간 성적 욕구의 불균형, 구체적으로는 남성의 성 활동에 대한 수요가 여성의 성 활동의 공급을 크게 웃돌기 때문인데, 이를 활용하면 여성은 자신의 가치(몸값?)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문제는 매력자본 그 자체라기보다는 매력자본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 산업을 비롯해 연예, 패션 산업 등 섹슈얼리티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여성의 매력자본이 큰 가치를 가질 수 있으리라고 보았지만, 그외의 분야에서는 활용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것이 현실이다. 책에 소개된 예로는 법조계에 진출하기 위해 이미 이 분야에서 성공한 연상의 남성을 이용한 여성과 독소 전쟁 중 러시아 군인에게 몸을 팔아 먹을 것을 구한 독일 여인들의 이야기 정도가 고작인데, 과연 이것이 옳은 행동인가 하는, 도의적인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매력 자본의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그리고 매력자본이 성평등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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