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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플랜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평점 :
이제 돈이 생겼고, 아내는 다시 꿈꿀 수 있었다. 희망 사항을 적고, 잡지를 넘기고, 새 인생을 계획할 수 있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 희망과 동경에 부풀어서, 스스로에게 확실히 이룰 수 있는 약속을 하고 있는 모습을 - 머릿속에 그리자니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끔찍하게 슬픈 구석도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함정에 빠졌다. 우리는 한계를 넘어섰으며, 돌아갈 수 없다. 그 돈 덕분에 꿈꿀 기회를 얻었지만 그 때문에 현재의 삶을 경멸하게 되었다. 사료상의 일, 알루미늄으로 옆면을 댄 집, 주변 마을. 우리는 그 모두를 이미 과거의 것으로 보고 있었다. 백만장자가 되기 전의 과거, 형편없고, 우울하고, 시시한 과거. (p.169)
주말에 <심플 플랜>을 읽었는데 좋아하는 장르인데도 재미가 없었다. 왜 재미가 없는지 곰곰 생각해보니 주인공 미첼이 안온한 삶을 버리고 너무 쉽게 범죄에 빠져드는 모습이 나에게는 현실성 없게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괜찮은 대학을 나와 안정된 직장에 입사, 대학 동창과 결혼해 곧 아이 아버지가 될 예정인 미첼은, 더없이 평범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성실히만 살면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왜 하루아침에, 수차례나 그만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에 빠져들었나? 누구 하나 종용하는 사람도 없고, 갚아야 할 빚이나 무의식을 조종하는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살인마가 되었나? 대체 왜? 그의 행동이 나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대목에서 무언가 선득한 느낌이 들었다.
하루아침에 수백만 달러로 짐작되는 눈 먼 돈이 손에 들어왔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백수인 형과 형의 친구 루, 단 둘뿐. 돈의 주인이 나타나면 돌려줄 계획이었지만 좀처럼 나타나지를 않고, 경찰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돈이 있으면 포기했던 야망도 이룰 수 있고 사랑하는 아내의 꿈도 이뤄줄수 있을 것이다.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이 아니라 훨씬 좋은 직장을 구할 수도 있고, 부모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헌 집을 떠나 세련된 새 집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있다. 곧 태어날 아이를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아이로 만들 수도 있다. 불가능한 일로 애초에 접어버린 꿈이 갑자기 가능한 일이 되어버리고, 상상만 했던 일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왔을 때 이성이 마비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미쳐버리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미첼처럼 꿈같은 미래를 담보로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는 사람은 현실에도 있다. 나중에 부자가 되고 유명한 사람이 되리라는 꿈에 미쳐 현실을 방기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도 그렇지 않은가, 다가오지 않은 미래(未來) 때문에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현실을 대충 살고있지는 않은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1987년이 배경이라서 그런지, 90년대 초반에 나온 소설이라서 그런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일단 주인공이 전문적인 범죄자가 아닌 생초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사람을 죽인다는 점이 납득이 안 된다. 한두명도 아니고 한 손으로 다 못 셀 정도로 많은 사람을 단번에, 깨끗하게 죽인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다. 살인을 한 뒤 너무 쉽게 완전범죄로 만들었다는 점도 이해가 안 된다. 머리카락 한 올, 표피하나로도 범인을 색출할 수 있는 CSI의 과학 수사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때라서 그런 걸까? 범죄자를 잡을 의무가 있는 보안관과 지역 경찰, FBI는 그를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선의의 평범한 사람들이 그의 범죄를 눈치채고 끝내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고 또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그 점이 단순한 계획(simple plan)을 더없이 복잡하게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