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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페이지 터너라는 동생의 말을 듣고 마음을 다잡고서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졌지, 결코 느려지지 않았다.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대학 졸업 후 의류회사 직원, 청년 해외 협력대 대원, 고등학교 교사 등 다양한 직업에 전전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했다는 그녀의 이력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수작(秀作)이다. 아니, 그동안의 이력과 다양한 경험 덕분에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일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교사로서의 경험은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고백>의 배경은 학교이고, 한 명의 교사와 세 명의 중학생, 한 명의 어머니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어느 여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반 학생들 중에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여러분은 열세 살이지요. 그렇다면 연령이란 대체 뭘까요?" (p.29) 여교사의 고백 부분을 읽으면 소설 전체가 형사 처벌 대상 연령의 허점을 이용한 소년범죄의 증가를 지적하고 소년법 개정을 촉구하는 내용인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고백 부분을 읽으면 그렇지만도 않다. 미즈키, 나오키의 어머니, 나오키, 슈야로 이어지는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애초에 죄는 무엇이고 벌은 무엇인지, 선과 악은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묻게 된다.
먼저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보고 싶은 면만 본다. 미즈키는 미즈키대로, 나오키의 어머니는 나오키 어머니대로, 나오키는 나오키대로, 슈야는 슈야대로, 심지어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여교사 유코마저도 같은 현실을 두고 자신이 보고 싶은 면만 보고 자기 식대로 해석한다. 그러고는 자기 나름의 판단으로 타인에게 멋대로 죄를 씌우고 멋대로 처벌한다. 과연 누가 선인이고 누가 악인인가? 완전한 선인, 완전한 악인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 소설에 수차례 등장하는 단어 '제재'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딸이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살인을 당했다는 사실이 분명한데도 여교사 유코는 경찰에 알리지 않고(공적 제재를 거부하고) 사적 제재를 실행한다. 미즈키는 몰래 약품을 마련하는 식으로 사적 제재를 꿈꾸고, 나오키의 어머니는 아들의 살인을 알고나서 경찰에 알리지 않고 스스로 벌하려 했으며, 슈야는 어머니에 대한 애증을 역시 사적 제재로서 해소하려고 했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왜 공적인 제재에 의존하지 않고 사적으로 제재하려고 하는가? 공권력을 믿을 수 없어서? 공적 제재 수단이 그들 생각에는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내 생각에는 공적 제재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사적 제재를 하려는, 개인적인 증오를 복수라는 행위를 통해 해결하려는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이 문제인 것 같다. 일본 소설 중에는 유난히 사회 제도의 그늘, 체제의 사각지대를 비판하는 소설이 많은데, 이 소설은 그런 류의 소설이면서도 궁극적으로 사회로 문제를 돌리지 않고 인간 본성과 부정적인 본성을 다스리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유약함에 대해 이야기한 점이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