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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심벌 1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12월
평점 :
<로스트 심벌>은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를 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댄 브라운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다른 네 작품은 진작에 읽었고, 최신작이자 여섯번째 작품인 <인페르노>도 출간되자마자 읽은 내가 이 작품만 유난히 늦게 읽은 것은 다름 아닌 원서 때문이다. <로스트 심벌>이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되기도 전에 원서를 사두었는데 이놈의(!) 귀차니즘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결국 못 읽은 게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인페르노>도 읽은 마당에 <로스트 심벌>만 안 읽고 넘어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 전 울며 겨자먹기로 우리말 번역본을 사서 읽었다. 물론 원서는 아직도 책장 구석에 꽂혀있다. 과연 읽을까? 으음...... (실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더 잡>도 진작에 원서를 사놓고 안 읽었는데 최근에 우리말 번역본이 나왔다. 으으음...)
줄거리는 댄 브라운 소설 특유의 기본적인 형식을 그대로 따른다. 주인공은 (언제나 그랬듯이) 로버트 랭던.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던 중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관장이자 프리메이슨의 최고위층인 피터 솔로몬이 연루된 의문의 사건에 휘말린다. 랭던은 오래전부터 막역한 사이였던 피터가 CIA까지 뒤쫓는 위험한 상황에 놓인 것을 알고 기호학, 역사학, 미술사학 등 온갖 지식을 활용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피터 솔로몬의 개인적인 아픔과 함께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숨겨진 역사적 진실과 프리메이슨과의 관계가 낱낱이 밝혀진다.
프리메이슨.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정확히 어떤 단체인지 몰라서 검색을 해봤다. 그랬더니 진지한 내용은 별로 없고, 모 유명 기획사가 프리메이슨이라느니, 어떤 노래가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한 것은 프리메이슨 덕분이라느니, 심지어는 프리메이슨의 상징이 삼각형이기 때문에 삼각김밥이 프리메이슨 사이의 신호라는 웃지 않을 수 없는 내용만 있었다. 댄 브라운 역시 소설 속에서 이러한 대중들의 오해에 대한 염려를 나타냈다. 프리메이슨은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음모론을 꾸미는 집단이나 비밀스러운 종교를 믿는 집단이 결코 아니며, 종교 또한 기독교 하나에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를 포용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프리메이슨의 진짜 목적은 과학과 의학, 예술 등 여러 학문의 발전을 주도하는 일종의 지식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프리메이슨이 개입된 새로운 과학으로서 작가는 '노에틱 사이언스'를 제시한다. 노에틱 사이언스란 인간의 마음, 생각 등 정신적인 힘을 연구하는 과학으로, 우리나라에는 '지력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런 게 정말 있는지 검색해봤더니, 결과가 나오기는 하는데 책에 소개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정식 과학이 아니라서 구체적인 연구 결과는 찾기 어려워도, 노에틱 사이언스와 관련 있어 보이는 사례를 찾아보면 많다. 말이나 생각에 따라 물의 상태가 바뀐다는 내용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메시지를 담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가 그렇다. <시크릿>도 같은 사례로 볼 수 있겠다.
"인간의 가장 오래된 영적 모색은 자기 자신의 얽힘을 인식하고 자신이 세상 만물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한 것이었어. 끊임없이 우주와 '하나'가 되고 싶은 열망을 품어왔던 거지. '온전한 하나의 상태(at one ment)'에 도달하기 위해서. 지금도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속죄(atonement)'를 갈구하잖아.(1권 p.100)"
프리메이슨 역시 노에틱사이언스나 고대의 수수께끼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숭배하며, 메이슨의 상징 가운데 상당수는 인체의 생리학과 관련되어 있다. '마음은 육신 위에 얹힌 황금 갓돌과도 같다. 이것이 바로 현자의 돌이다. 등뼈의 계단을 통해 에너지가 오르내리며 순환하고, 마음과 몸을 연결시킨다.' 피터는 사람의 척추가 정확히 서른세 개의 등뼈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우연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33은 메이슨의 등급 숫자다.' 척추의 기초, 즉 천골은 말 그대로 신성한 뼈를 의미한다. '사람의 몸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신전이다.' 메이슨이 숭배하는 인체 과학은 그 신전을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이고 고상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고대의 해석 방식이다. (2권 p.277)
프리메이슨과 노에틱 사이언스 둘 다 믿지는 않지만, 그것들이 결국 인간의 몸과 마음에서 답을 찾는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프리메이슨의 중심 사상 중에는 고대 종교도 기독교도 아닌 인체 과학에서 따온 것이 많다. 노에틱 사이언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마음이 그 자체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연구한다. 학문의 범주 안에 갇혀 정작 무엇을 위한 학문인지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프리메이슨은 따로 학문의 경계를 두지 않고, 노에틱 사이언스는 통념을 깨고 아예 새로운 학문을 창시했다는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인류가 알고 있는 지식은 수천년 전에 살았던 조상들도 이미 알고 있었던 지식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도 생각해 볼 만하다. 얼마 전 체코 출신의 화가 알폰스 무하의 전시회에 다녀왔는데, 알폰스 무하 역시 프리메이슨이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황도 12궁, 별자리, 사계절, 여성의 신비 등 고대 종교를 연상시키는 그의 그림들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당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유럽은 기독교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고, 기독교는 (본류이기도 한) 고대 종교의 상징들을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그가 프리메이슨이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가 인류의 가장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믿음 체계와 지식을 활용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앞에서 말한 프리메이슨에 연루되었다는 오해를 받은 모 기획사나 히트곡 역시 프리메이슨이라서가 아니라, 프리메이슨도 활용한 인류의 유서 깊은 상징, 기호 체계를 이용했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끈 것으로도 보는 편이 맞다. 음모론의 메스를 들이대자면 끝이 없는 법. 그 전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정확한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라는 댄 브라운의 메시지는 언제까지나 유효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