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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사회학 - 콩트에서 푸코까지, 정말 알고 싶은 사회학 이야기
랠프 페브르 외 지음, 이가람 옮김 / 민음사 / 2013년 6월
평점 :
'밀라'라는 이름의 여학생이 있다. 나이는 스무살. 이제 갓 대학교에 입학했다. 전공은 사회학. 고등학교 때 성적이 잘 나온 과목이라서 선택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밀라'라는 이름. 본명이 아니다. 사실 그녀에게는 가족 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하나 있다. 대학에 입학하기 얼마 전, 그녀의 아버지가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훔치는 죄를 저질러 온 국민의 비난을 받으며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고, 하필이면 언론에 딸인 그녀의 사진이 공개가 된 것이다.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면 학교 생활을 편히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이름을 바꾸고 변장을 하고 학교에 다녔다. 룸메이트 친구들도, 좋아하는 남학생도 모르게 말이다.
줄거리만 봐서는 소설같은 책 <스무 살의 사회학>은 어엿한 사회학 개론서다. <소피의 세계>가 소피라는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철학이라는 학문을 개괄하듯, 이 책은 밀라라는 여학생을 통해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소개한다. 사회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기는 했지만, 배우면 무슨 도움이 되는지, 계속 공부를 해도 좋을지 몰라 혼란스러운 밀라. 그런 그녀의 속도 모르고 학교 수업은 계속 진행된다. 사회학의 창시자인 콩트부터 뒤르켐의 도덕적 개인주의, 미드의 상징적 상호 작용론, 고프먼의 낙인 이론, 푸코의 권력 이론,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베버의 관료제, 마르크스 주의, 페미니즘 등 외울 것도 많고, 이해할 것도 많았다. 수업 따라가기에도 벅찬 밀라에게 학교 안팎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선배들, 어머니와 오빠, 친척들은 사회학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냐, 그거 배워서 취직이 되겠냐고 물어댄다. 속으로는 그만두고 싶다, 하나도 모르겠다고 외치면서도, 막상 그런 질문을 받으면 밀라는 그들에게 사회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용하며 위대한 학문인지를 설명하게 되어버린다. 전시회에서, 택시 안에서, 심지어는 좋아하는 남학생과의 대화 속에서도 그녀는 수없이 사회학 이론들을 떠올리며 사회학자처럼 생각하고 대답하는 연습을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사회학을 배워서 어디에 쓰는지, 계속 공부를 해도 될지 답을 얻는다.
"사회학은 개인이 그 자신보다 더 큰, 사회라고 불리는 것에 의해 형성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해요.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사회학'이라는 말을 쓴 이래로 계속 이어져 내려온 개념이죠. 그는 바로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더 전에 태어난 오귀스트 콩트라는 프랑스 사람이에요." (p.73)
"달리나는 사회학과 상식은 독특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상식은 사회학의 시작점이자 남겨 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종종 상식, 즉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 틀렸음을 보여 준다. 상식이 틀렸다는 건 전체를 포괄하는 사고 체계로서나 객관적 사실로서 틀렸다는 뜻이지만, 일상적 수준에서 상식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틀릴' 수 없다. 사회학이 철학, 경제학 등과 다른 것은 이와 같은 상식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p.294)
까맣게 있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밀라처럼 대학교 1학년 때 사회학 수업을 들었다. 정식 수업은 아니고 세미나 수업이었는데, 마침 그 세미나를 담당하던 교수님이 사회학과 교수님이라서 본의 아니게 한 학기 동안 '사회학 개론'을 들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 교수님께서 (이 책에 소개되기도 한) 밀스의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책을 추천하시며, 사회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사회학의 기본 개념과 주요 이론들을 이해해두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그 때는 그저 사회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담당하는 학문을 더 알리고 홍보하려고 하시는 말씀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그 때 한 학기 동안 사회학을 배웠던 것이 나중에 전공인 정치외교학과 경제학을 공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각각 학문의 성격이나 이론, 방법론 같은 것은 달라도, 결국 사회과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비슷한 인식틀을 공유하고, 무엇보다도 인간도, 자연도 아닌 '사회'라는 대상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연이기는 해도 한 학기 동안 사회학을 배운 덕에 대학 4년 동안 남들보다 더욱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처럼, 계속 사회과학을 공부해나갈 사람으로서 이번 기회에 사회학을 좀 더 열심히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 학자와 이론들이 참으로 많다. 푸코가 그렇다. 대학교 때 벤담의 파놉티콘에 관한 소논문을 쓰면서 푸코에 대해서도 잠시 공부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푸코의 이론이 감시와 처벌 같은 사회적 감시, 형벌 시스템에서 성과 몸의 권력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앞으로 자세히 공부해보고 싶다. 이런 식으로 페미니즘, 감성 사회학, 문화 사회학 같은 것도 다시 공부해보면 좋겠다. 공부라는 것이 대학교 때 반짝 하고 그만둘 게 아니라 평생 동안 해야할 '업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