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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여기 일 년 동안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기로 한 여성이 있다. 마흔여섯 살 생일을 기점으로 하루에 책 한 권을 읽는다. 책을 다 읽으면 반드시 서평을 쓴다. 다 쓴 서평은 '리드올데이(Read all day)'라는 이름의 웹사이트에 올린다. 책을 읽는 대신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다른 취미 생활은 잠시 그만두기로 한다. 식사 준비나 청소, 빨래, 설거지 같은 집안일은 가족들과 분담한다. 다소 무모하고 벅차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 '프로젝트'를 계획한 여성의 이름은 니나 싱클레어. <혼자 책 읽는 시간>에는 그녀의 치열했던 1년 동안의 독서 기록이 담겨 있다.
네 아들을 둔 어머니이자 전업주부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저자는 어느 날 언니 앤 마리가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이민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탓에 다른 친척도 없어 유난히 가깝고 애틋한 사이였던 자매였기에, 언니의 죽음은 저자에게 그 어떤 일보다도 충격적이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언니를 잃은 슬픔과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있던 저자는 '도피처'로서 책을 찾기 시작했다. 언니가 사랑했던 책, 언니와 함께 읽었던 책....... 책을 읽다보면 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더욱 분명해진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의 불공평함, 일상의 덧없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자는 일 년 동안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는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언니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 삶의 카드는 왜 내게 주어졌으며, 난 이걸로 뭘 해야 하는가? (중략) 난 도피에 대해 생각했다. 도피하기 위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도피하기 위해 읽는 것이다. 20세기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시릴 코널리는 '말은 살아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책을 활용하고 싶었던 방식이 바로 이것이었다. 삶으로 되돌아가는 도피 말이다." (p.35)
당차게 도전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들 넷을 뒷바라지 하는 것만 해도 벅찬 일이다보니 책 읽을 짬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학부모 모임, 동네 모임 등 각종 사회 활동을 포기하는 것도 힘들었다. 책 읽기에도 시간이 빠듯한데 서평까지 써야했다. (이 고통(!)은 내가 잘 안다.) 웬만큼 책을 좋아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결코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저자는 책을 '취미삼아' 읽기로 한 것이 아니었다. 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피폐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도피처 삼아, 요양을 할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현실이 너무 가혹하고 불공평해서, 내가 속한 이 현실 너머의 세상, 또는 과거나 미래로 달아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도망치기 위해 읽은 책 속에서 저자는 다시 살아갈 힘을 축적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환란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부모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었고, 책만 읽는 자신을 받아주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어린 시절, 철부지처럼 굴었던 자신을 감싸주었던 언니 앤 마리의 다정한 마음을 되새겼고, 그녀와 공유하고 있는 추억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엄밀하게 말해, 사람들이 책을 권할 때, 아무나 마음대로 보라고 자신의 영혼을 열어젖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라고 말하면서 책을 건네줄 때, 그런 행동은 그들 영혼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우리가 좋아하여 읽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어떤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책이 우리 자신의 어떤 면모를 진정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로맨스물 애호가이든 모험물 지지자이든, 범죄물에 남몰래 매혹된 사람이든 말이다." (p.131)
이 책은 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자매 간의 사랑, 우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몇 장 읽기도 전에 울음을 터트렸다. 유난히 사이좋던 자매 중에 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혼자 남겨진 동생이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이 왠지 우리 자매의 미래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우리 자매도 부모님과 우리 둘 말고는 세상에 의지할 사람도 없고, 그래서 더욱 각별한데, 나중에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 동생이 혼자 남겨질 생각을 하면 가엾고 안쓰러워 가슴이 먹먹하다. 저자가 책에 의지해 다시 삶을 살아갈 용기를 낸 것처럼 동생도 내가 사랑하는 책이나 동생이 좋아하는 만화를 통해 위로받고 치유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혼자가 되어 (책 제목처럼) 혼자 책 읽는 시간이 생기더라도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