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정진홍의 인문경영 시리즈 1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는 인문학과 경영학의 통합을 시도한 시조(始祖) 격인 책이다. 자칭 경제경영 전문 서평 블로거이고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은데 왜 이 유명한 책을 이제까지 안 읽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늦게 읽은 김에 왜 이 책이 '인문경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며 출판계를 넘어 경영학과 인문학계 전반에 새 바람을 일으킨 것인지 이유를 찾으며 읽어 보았다.



첫째, 인문학과 경영학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았다. '인문경영'이 주제인 책들은 크게 두 가지 패턴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인문학을 중심으로 하면서 경영 또는 자기계발의 지혜를 곁들이는 것이다. 보통 인문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쓰는데, 너무 어려워서 읽는 것을 포기하고 집어던지기 쉽다. 둘째는 경영학을 중심으로 하되 인문학에서 근거나 사례를 찾는 것이다. 이 책이 여기에 속한다. 저자 정진홍은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커뮤니케이션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비전공자가 전공자에게도 어려운 인문학과 경영학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은 모험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저자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답게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게 글을 썼고, 비전공자인 만큼 핵심만 쉽고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살렸다.



둘째, 고전과 최신 트렌드를 잘 조화시켰다. 인문학 중심의 인문경영서를 보면 어렵고 딱딱한 고전을 해석하고 풀이하는 데 그치거나, 저자의 지식을 과시하는 수준에 머문 경우가 많다. 반면 이 책은 중국 고전, 고대 로마 고전, 근대 고전 등 여러 나라, 여러 시대의 고전이 인용되기는 하지만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그 대신 빌 게이츠, 잭 웰치, 클린턴 등 현대의 경영인, 직장인들이 존경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어 있고, 창의성, 디지털, 스토리 등 최신 트렌드에 대한 설명 비중이 크다. 티핑 포인트, 블루 오션, 드림 소사이어티, 스토리텔링 등 경영학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용어들도 인문학적으로 설명했다. 고전을 읽기에는 겁이 나고, 최신 트렌드만 알기에는 헛헛하다 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내가 가진 레퍼런스의 두께는 곧 나의 두께다. 우리는 자신의 레퍼런스만큼 이 세상을 보고 느끼며 살아간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똑같은 책을 읽어도, 받아들이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각자의 레퍼런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내가 영화를 보거나,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나의 레퍼런스가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중략) 책도 마찬가지다. 그저 다이제스트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읽고 곱씹어야 진짜 내 것이 된다. 그렇게 레퍼런스의 두께를 만들고 나면, 그 두께만큼 세상을 느낄 수 있다. 즉 낯선 곳에 자신을 던져 자기 안의 에너지를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레퍼런스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기억하라." (pp.115-6)



"빈곤은 밥과 돈의 문제이기 이전에 생각과 정신의 문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빵일지 모르지만 정말 긴요한 것은 '자존감의 회복'이다. 가난한 이들도 중산층들이 흔히 접하는 연주회와 공연, 박물관과 강연 같은 '살아 있는 인문학'을 접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이는 그런 경험들이 깊이있게 사고하는 법, 현명하게 판단하는 법을 삶 속에서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pp.11-2)



셋째, 인문학과 경영학의 통합이라는 시도 그 자체의 가치다. 몇 년 전까지 경영학은 경영학대로 잘 나가고, 인문학은 인문학대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 책을 비롯하여 인문학과 경영학을 조화시킨, 일명 '인문경영서'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경영학은 학문으로서의 역사가 짧다는 약점을 인문학을 통해 보완하고, 인문학은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돌 만큼 심각한 평가절하의 상황에서 경영학 등 신학문과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돈 안 되는 학문은 거들떠보지 않는 세태 속에서 인문학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혹자는 '인문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인문학을 재해석하는 것 역시 인문학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모든 학문은 인간을 위해 쓰이는 수단이자 도구다. 인문학이 위기를 맞은 것은 인문학 그 자체의 가치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처럼 CEO를 비롯한 경영자, 직장인들을 위해서든, '클레멘트 인문학'처럼 비록 당장 형편은 어렵지만 인문학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고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자 하는 빈곤층을 위해서든 인문학은 앞으로 더 '발견'되고 '발굴'되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