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다가온 사랑의 끝은......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소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를 알게 된 건 책 전문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통해서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과 함께 서간소설이라는 주제로 묶여서 소개되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김중혁 작가님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 대해서는 호평을 하시고 이 책에 대해서는 안좋게 평을 하셔서, 사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만 읽고 이 책은 안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몇 주 전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새 책 같은 중고책이 나와있어서 나도 모르게 구입을 해버렸다.  

서간소설은 편지 형식의 소설을 일컫는데, 이 소설은 '현대의 편지'인 이메일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그것도 원래부터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에미라는 여성이 잡지 정기구독을 취소하기 위해 이메일을 보낸다는 것이 레오라는 이름의 남자에게 잘못 보내는 바람에 시작된다. 처음엔 메일을 잘못 보내서 미안하다, 괜찮다는 식의 사무적인 말이 오고 갔지만, 점점 사적인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두 사람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연인 사이 같은 관계가 된다. 내가 좋은가요, 내가 보고 싶은가요 등 아주 단순하고 유치한 질문들을 하며 즐거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풋풋했던 첫 연애의 기억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두 사람은 가벼운 문장 너머의 묵직한 현실을 마주 하게 된다. 대학의 조교수로서 번듯하게 살고 있는 줄 알았던 레오는 알고보니 오랫동안 실연의 상처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고, 명랑하고 쾌활하게만 보이던 에미는 때이른 결혼과 가사의 부담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가벼운 관계는 에미의 친구와 남편의 등장으로 급물살을 타게 되고, 급기야 인생을 걸고 이 관계를 지속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만난 적도 없는 낯선 이에게서 익숙한 일상을 잊게 만드는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 신기한 일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연애가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그들의 문장 또한 단순하고 유치하기 그지 없지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든가, <화양연화> 같은 전설적인 러브 스토리도 본질은 어린애들 놀이같을 것이다. 김중혁 작가님이 왜 안좋게 평을 했는지는 알 것 같지만(결말이 허무하고 찝찝하다. 게다가 후속작까지 있다!), 그렇게 나쁘기만 한 소설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