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사서 - 3천 년 역사를 이끈 혁신, 전략, 인재, 소통의 비전
김원중 지음 / 민음인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여름휴가 때 경북 영주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에 다녀왔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백운동서원인데, 당시 풍기군수 주세붕이 중국의 백록동서원을 흠모하여 선현을 배향하고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시설을 만든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백운(白雲)'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머리 위로 흰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모습이 서원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서원을 거닐고 있자니 몇백 년 전에 중국의 것을 본따서 우리의 것으로 승화한 주세붕 선생의 정신이 새삼 감동스러웠다. 옛사람들의 좋은 것을 보고 더 좋은 것으로 승화하는 '온고지신'의 자세는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온고지신' 하니 얼마 전에 읽은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바로 고전 전문가 김원중이 쓴 <경영사서>라는 책이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익히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문학박사를 받은 학자로, 삼성전자, 사법연수원, 경찰청, 전경련, 한양대 등에서 강의하고 현재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고전 강연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비자>, <손자병법>, <사기>, <정관정요> 등 중국의 대표적인 고전 네 권을 통해 현대인들이 배울 만한 경영과 처세의 지혜를 소개했다. "오래전부터 고전을 통해 시대의 고민을 풀어 보려는 움직임들은 많았고 현재에도 계속해서 시도되고 있다. 나 또한 지금까지 30여 권의 고전을 펴내면서 수천 년 전에 고민했던 문제들이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p.10) 고전 하면 말 그대로 옛사람들이나 보던 옛날 책[古典]으로 여기고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일찍부터 고전의 가치를 깨달아 현대인, 그 중에서도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인과 직장인이 익히면 좋을 지혜들을 연구했다. 



저자는 먼저 <한비자>를 통해 리더십에 대해 설명했다. 저자인 한비는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릴 만큼 현실정치를 중시했다. 그는 공평함과 엄정함으로 신하를 통제하는 것을 좋은 리더십으로 보았다. 개인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라 법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 즉 시스템을 강조했다는 점은 높이 사지만, 진시황과 조조 등 법가를 따른 인물들이 끝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은 후세 사람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손자병법>을 통해서는 전략 경영의 비법을 설명했다. <손자병법> 하면 흔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떠올리는데, 원전에는 '백전백승'이 아니라 '백전불태'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백전불태'란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으로 결코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싸워서 승리하는 것보다는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역으로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병법서라서 당연히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에 대한 책인줄로만 알았는데, 오히려 싸우지 않는 방법,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에 대한 책이라니 놀라웠다. 그만큼 싸움의 무의미함, 승리의 무상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전쟁도 드물고 물리적인 싸움도 보기 힘든 현대 사회를 본다면 손자가 흐뭇해 할까? 겉만 본다면 몰라도, 자세히 들여다본 다음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하다못해 텔레비전 TV쇼에서마저 경쟁과 대결이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닌가.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을 으뜸으로 여겼던 손자는 분명 모든 것을 경쟁과 승패로 치환하는 현대 사회를 못마땅해 했을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서는 인재 경영과 처세에 관해 설명했다. 사마천은 왕의 뜻을 거역하는 죄를 저질러 생식기를 거세당하는 궁형을 받았다. 수치스러운 마음에 자살까지 하려고 한 그가 마음을 고쳐먹고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완성한 책이 <사기>다. 그래서인지 <사기>에는 '인간의 도리'에 관한 내용이 많다. "춘추 전국 시대에서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격동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부류의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의 인생 역정을 살피는 책이 바로 <사기>입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것들, 가장 극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치열하게 고민했던 문제와 사고가 여기에 다 모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197) 인간의 도리 중에서도 인재를 다스리는 방법의 예로 저자는 진나라 시황제를 든다. 진시황은 출신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인재를 받아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다른 나라의 인재들이 너나할 것 없이 진나라를 찾게된 것이고, 초나라 출신의 '이사' 같은 인물이 무려 22년 동안 재상직을 맡으며 수많은 개혁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세에 관해서는 한나라 유방의 부하인 한신과 소하를 살펴보면 좋다. 한신은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으나 처신을 잘못하여 '토사구팽'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반면 소하는 전쟁터에서 칼 한 번 휘두른 일 없는 문관이지만 처신을 잘하여 일등공신으로 추앙받았다. 지도자, 리더, 상사로서 보다는 직원이나 부하로서 일하는 날이 더 많은 보통의 샐러리맨들이 필히 알아두어야 할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정관정요>를 통해서는 신뢰의 정치, 소통의 가치, 인문학 육성의 중요성 등을 역설했다.



이 책에 소개된 네 권 모두 수세기 동안 나라의 지도자들에게는 국가를 경영하는 기본 원리가 담긴 책으로서, 관료와 군인들에게는 지도자를 섬기고 백성을 다스리는 실무서로서, 학자들에게는 선현의 지혜가 담긴 교과서로서 전해져왔으며, 이제는 중국을 넘어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인류의 고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네 권 중에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본 책이 없어서 잘 읽을 수 있을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읽고나니 네 권을 포함하여 다른 고전들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고전 자체가 쉬워서라기보다는, 저자가 쉽게 해설한 덕이 큰 것 같다. 기왕이면 원전을 읽는 것이 좋겠지만, 뜻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글자만 읽을 바에야 이 책 같은 해설서를 곁에 두고 의미를 풀이해가며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경영사서>를 통해 인문학과 경영학, 고전의 지혜와 현대적 교훈을 모두 잡을 수 있어서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