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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 ㅣ 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 1
빌 포셋 지음, 권춘오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젊은이들의 역사 지식이 부족하다, 역사 의식이 낮다는 보도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 교육 광풍'이라고 할만큼 교육의 비중이 영어에 심하게 편중되어 있고, 언어나 수학처럼 입시 반영 비율이 높은 과목 외에는 제대로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으며, 심지어 대학에서조차 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학과를 홀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교육계의 현실이다. 게다가 사회 전반에 새로운 것, 재미있는 것에만 열광하고, 당장 앞에 놓인 것, 앞으로 일어날 일에만 신경을 쓰는 풍조가 만연하니, 역사는 그야말로 '찬밥 신세'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앞만 보는 사회에서, 입시에 도움되고 돈 되는 것만 강조하는 어른들과 사는 젊은 세대가 역사에 무지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가만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로부터 학습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또 다시 반복하게 된다'라는 조지 산티아니의 말처럼,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잘못된 역사를 다시 반복할 위험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역사 교육은 절실히 필요하다. 이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 바로 <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다.
저자 빌 포셋은 전쟁이나 전투의 역사에서 나쁜 결정을 내린 사례에 대한 책을 수십 권 집필한 바 있는 대학교수이자 작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무려 100가지나 되는 역사상의 실수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했다. 페르시아의 지방 영주 격에 불과했던 밀레토스의 군주 아리스타고라스는 총독을 무시하는 실수를 저질러 페르시아 전쟁이 발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럽 북부의 무법자였던 바이킹족은 예전 지도자의 딸이 벌인 잘못을 용서하는 실수를 저질러, 후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밝혀지는 빈란드라는 대륙을 버렸다. 그 결과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수 세기나 미뤄졌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황태자는 사라예보에 가지 말라는 경고를 수차례나 무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결국 그는 암살범의 총에 맞아 사망했고, 그의 죽음으로 인해 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다. 그로부터 몇십 년 후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미군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승세를 잡았으나, 중공전의 개입을 경고하는 정보를 무시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전쟁은 3년이나 이어졌으며 한반도는 분단국가가 되었다. '역사에 만약(if)은 없다'는 말도 있지만, 만약 이들이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역사를 바꾼 다른 실수들을 잘 알기라도 했다면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적어도 한반도는 지금처럼 분단된 상태가 아니지 않았을까?
정치인이나 국가적인 인물의 실수로 벌어진 사건들도 있지만, 정치와 상관이 없는 사람들 또는 일반인들의 실수가 역사를 바꾼 사례들도 소개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가령 중세 마녀사낭 당시 고양이가 마녀를 상징한다는 인식이 팽배하여 사람들은 마녀와 함께 고양이들도 몰살했다고 한다. 그 결과, 얼마 후 유럽에서 흑사병이 발생했을 때, 흑사병을 옮기는 쥐를 잡아먹을 고양이의 개체수가 부족해서 흑사병이 쉽게 진압되지 못했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죽이지 않았다면 흑사병이 그토록 많은 사망자를 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역사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세계 최초의 제국을 건설한 로마인들의 실수도 빼놓을 수 없다. 로마인들은 높은 수준의 상하수도 건설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값이 싸다는 이유로 상하수도관을 납으로 만드는 실수를 저질렀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납중독이 되어 신체적인 질병이나 정신이상 증세를 겪었다. 로마 최후에 유난히 폭정이 많았던 것은 납중독 탓이 아니었을까? 납중독이 되지 않았더라면 로마의 종말은 좀 더 나중의 일이 되지 않았을까?
책에 소개된 실수들은, 시기적으로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충실하게 다루고 있고, 지역적으로는 서양 문명의 발상지인 유럽을 비롯하여 아시아, 아메리카 등 비교적 포괄적이다. 역사를 역사 그 자체로 다루지 않고 인물의 심리적 특성이나 전략상 특징, 의사결정 과정 등 심리학이나 경영학, 정치학 등에서 쓰일 법한 관점으로 분석했기 때문에 역사를 잘 모르거나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 읽어볼 만하다. 입시 비중이 낮으니까, 돈이 되는 학문이 아니니까 무시하지 말고, 유명인이 아니니까, 정치인이 아니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 한 사람도 역사의 일원이고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역사를 좀 더 소중히 여기고 역사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적어도 후손들이 지금 우리들의 역사를 실수로 평가하는 일은 없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