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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이숲 지음 / 예옥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내가 나를 제대로 보기 어렵고, 피를 섞은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듯이, 자신이 속한 국가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관점을 가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보는 관점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나라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런데 부정적인 면조차도 옹호하고 포장하거나 지나치게 자학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으로서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해 펼쳐든 책이 바로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이다.
저자 이숲은 서울대 철학과를 거쳐 스웨덴 웁살라대학, 포르투갈 코임브라대학에서 유럽현대사 석사 과정을 수학했다. 원래 저자는 역사 인식이라는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스웨덴 유학 시절 도서관에서 우연히 근대 조선에 대해 서양인들이 작성한 고문서를 발견하고부터 서양인들의 조선에 대한 인식과 한국인들의 국가에 대한 인식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저자에 따르면 개항 후 처음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찾은 서양인들 중 다수가 조선을 미개하고 더러운 나라로 인식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먼저 조선땅을 밟은 서양인들의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이문화, 이문명을 접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배타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민족의 전통과 문화, 예절, 사람들의 인정 등을 접하면서부터는 긍정적으로 시각이 더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을 옹호하는 입장이 우세해지는 것을 경계한 일제는 서양인들의 (부정적인) 초기 견해만을 퍼뜨렸고, 아예 국가정책으로 정체성론, 타율성론 등 식민사관을 주입하면서 한민족 스스로가 자신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끔 만들었다. 장점은 모조리 가리고 단점만을 부각시킨 것이다. "치밀하게 계획된 일본의 악선전으로 인해 한국 사람들의 성품이나 공적은 폄훼되었고, 온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실상인 양 그대로 믿었다. 일본은 줄기차게 한국 사람들을 무식하고 후진적이라고 악평을 해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잘 알았고 또 2천 4백만의 한국 사람들이 강인하고, 지성적이며, 슬기로운 민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앨리스 아펜젤러)" (p.272)
문제는 외부의 인식이 아니라 한민족 스스로의 자기 인식이다. '한국인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한국인은 당파를 나누기 좋아한다' 같은 말을 지금도 가끔 듣는데, 이러한 말들은 사실이 아니며, 일제가 주입시킨 식민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잘못된 이데올로그가 주입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깨달았으면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이런 말이 남아있다는 것은 식민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또한 이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비극적인 경험을 한 바 있는 한국인 스스로가 다른 국가와 민족에 대해 포용하는 노력을 해야하는데, 여전히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논리를 반복한다든가, 약소국을 멸시하고 약소국 국민을 비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정체가 아닌 퇴보이다. "한때 약자로 살았기에 이제는 강자로 올라서자고 말하지 말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길을 찾아 가야 한다. 사회적 약자와 역사적 약자를 보듬고,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와 문화적 다양성을 향한 세계시민의 가치로 무장해야 한다. 역사의 유산이 우리의 길을 비추고 있다." (pp.332-3)
이런 류의 책은 왠지 국수주의, 애국주의적인 색채가 짙을 것 같아서 읽기가 꺼려졌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런 내용이 아니었고, 저자 자신도 그 점을 가장 경계했다고 한다.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지만 고문서 자료를 통한 실증 분석에 근거한 것이니 알아두면 좋을 것 같고, 한국인의 폭식 문화라든가 박마리아, 루스 등 서양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인물들에 대한 기록도 들어있어서 읽는 재미도 있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식민사관의 잔재를 청산하고 좋은 점은 좋게 보면서, 나아가 이러한 자기 인식의 교정을 통해 다른 국가, 다른 민족에 대해서도 정당한 시각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