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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에쿠니 가오리.가쿠타 미츠요.이노우에 아레노.모리 에토 지음, 임희선 옮김 / 시드페이퍼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이따금씩 멜랑콜리한 기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찾게 되는 작가가 바로 에쿠니 가오리다. 거창한 주제나 파격적인 줄거리 같은 건 없지만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과 섬세한 심리 묘사를 보고 있노라면 들떠있던 기분이 가라앉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은 사실 에쿠니 가오리의 이름만 보고 덥석 산 책이다. 사고나서 보니 에쿠니 가오리 혼자 쓴 것이 아니라 가쿠타 미츠요, 이노우에 아레노, 모리 에토 등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들이 함께 참여한 소설이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실망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기뻤다. 이노우에 아레노는 처음 보는 이름이었지만 가쿠타 미츠요와 모리 에토는 이미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좋아하게 된 작가들이라서 오히려 득 본 기분이었다. 에쿠니 가오리 책을 샀더니 가쿠타 미츠요와 모리 에토에 이노우에 아레노까지 따라왔네, 랄까.
이 책은 구성이 조금 독특한데, 네 명의 작가들이 각각 포르투갈(에쿠니 가오리), 스페인(가쿠타 미츠요), 이탈리아(이노우에 아레노), 프랑스(모리 에토) 등 유럽 국가들을 직접 여행한 뒤 여행지를 무대로 쓴 단편 소설들을 한데 모았다.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 중에 이 책을 쓰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 작가가 유럽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다는 기획 자체도 신선하지만, 여행지의 향토미랄까, 고유한 분위기를 드러내기 위한 소재로 '음식'을 택한 것이 재미있다. 책에 실린 소설 모두 주인공이 음식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고향의 의미를 되새기고 다시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얻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한동안 '소울 푸드'라는 말이 국내에서도 유행했는데, 음식만큼 지역의 고유한 풍토와 그 지역 사람들의 기질, 즉 '소울'을 잘 보여주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이런 것을 보면 나라마다, 문화마다 전통 음식은 달라도 그 음식이 가지고 있는 힘과 의미는 비슷한 것 같다. 한국인만 해도 저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 달라도 외국에 있거나 몸이 몹시 아플 때처럼 '소울'이 부족해지면 된장국과 김치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것을 보면 음식은 영어보다도 강력한 만국공통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