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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 가슴속에 품어야 할 청춘의 키워드 20
정여울 지음 / arte(아르테)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정혜윤 이후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에세이 작가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정여울. <시네필 다이어리>,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등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낸 유명 작가라는데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신간 <그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저자가 지나온 20대를 돌아보며 지금의 청춘들에게 해주고픈 말을 담은, 담백하면서도 알싸한 느낌의 에세이집이다. '담백하다'고 한 이유는 저자의 이야기가 여느 어른들의 청춘을 위한 담론과는 달리 교훈성이 강하지도 않으면서 지나치게 낭만적이지도 않은 까닭이고, '알싸하다'고 한 이유는 담담한 이야기 속에 은근슬쩍 생각할 거리를 주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 나이에 벌써 몇 권의 책을 낸 작가이자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을 정도면 저자가 20대를 남들보다 덜 치열하게 보내지는 않았다는 뜻이 될텐데, 그녀는 그러한 외적인 조건을 이루는 과정보다도 내적인 성장을 하는 시간이 훨씬 고통스러웠다고 말한다. 저자는 어린시절 집에서는 사랑받는 장녀였고,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20대가 되면서 '고시 공부를 하라'는 부모님의 기대는 더 이상 자신의 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만 모인 서울대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라는 이전의 타이틀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며 자기 안으로 침잠했고, 오랫동안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방황했다. 그러다 마침내 '글쓰기'라는 인생의 업을 찾게 되었고, 그동안의 방황과 고민은 저자의 글 속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재료가 되었다.
저자는 20대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화두를 우정, 여행, 사랑, 재능, 멘토 등 총 스무 가지로 정리하여 풀어썼다. 물론 저자가 20대에 그 모든 화두에 대한 답을 얻은 것은 아니다. 친구도 많지 않았고, 여행의 매력은 20대의 끝무렵에나 알았으며, 오랫동안 멘토로 모셨던 분과는 헤어졌고, 돈과 직업, 정치, 죽음 등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산더미다. 그러나 20대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20대에는 그전까지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처음으로 인생을 진지하게 마주하게 된 것으로 충분하다. 어쩌면 30대에도, 40대, 50대, 아니 죽을 때까지도 알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이미 답을 얻었다면 그거야말로 '문제'가 아니겠는가.
저자는 알 수 없는 문제들을 고민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지금을 좀 더 충분히 누리라고 조언한다. 여기서 '누린다'는 것은 그저 먹고 마시고 놀며 여유를 부린다는 뜻이 아니다. 20대만의 열정과 감성으로 눈 앞에 보이는 일들에 절실하게 매달리고 온몸으로 부딪치라는 뜻이다.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잉여' 등 20대에 대한 신조어가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오늘날 청춘에 대한 담론은 넘쳐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작 20대 스스로가 만든 담론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집에서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들딸로, 학교에서는 공부밖에 모르는 모범생으로 자라다보니 자기 머리로 생각한다든가 잘못된 현실에 반기를 드는 연습이 덜 된 탓이 아닌가 싶다. 그 결과 지금의 20대는 아무 불평없이 직장인으로, 취업준비생으로, 인턴사원으로, 알바생으로 자신의 청춘을 노동력으로 제공하는 노동자로 전락했고, '얼리어답터' 또는 '트렌디 세터'라는 이름에 헤헤거리며 아무 생각없이 대기업이 만드는 제품을 사들이는 소비자로 전락했다. 어른들이 그네들을 잉여라고, 모태솔로라고 불러도, 그것이 놀림이고 비꼼인지도 모르는 그들. 과연 그들이 세상의 주역이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같은 20대로서 너무나도 부끄럽고 또 반성하게 된다.
청춘에 관한 책이 워낙 흔하고 책 속에 사진도 많이 실려 있어서 시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가벼운 느낌의 에세이집이 아닐까 싶었는데, 대부분의 20대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부터 좀 더 관심이 필요한 문제들까지 꼼꼼하게 담겨 있는, 의외로 '무거운' 책이어서 놀랐다. 20대의 끝무렵을 살고 있는 '말년 병장', 아니 '말년 20대'로서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