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폴 크루그먼 지음, 김광전 옮김 / 황금사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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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마 전에 읽은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와 이번에 읽은 <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의 진실>은 비슷한 시기 - 1990년대 중반 - 에 쓰인 책이다. 비슷한 시기에 쓰인 책이라서 그런지 다루는 이슈와 주장하는 내용, 비판하는 학자 등이 매우 비슷하다.


저자는 먼저 '경쟁력'이라는 개념 내지는 신화에 대해 비판한다. 경쟁력이라는 말, 참 자주 듣는다. 국가 경쟁력을 세계 몇 위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든지, 경쟁력이 높은 분야는 지원해야 하고, 낮은 분야는 정리해야 한다든지 등등 말이다. 그런데 경제학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경쟁력이라는 말을 적어도 국제경제에 대해서는 쓰기를 주저하는 게 맞다. 왜냐하면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따르면 국가는 절대적으로 우위를 가지는 산업이 없더라도 무역의 원리상 비교우위를 가지는 산업이 하나 이상 존재하기 때문에 자유무역을 통해 무역의 이익을 누릴 수 있고 사회적 후생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등수를 매기듯이 경쟁력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며, 비교우위의 원리에 따라 무역을 하다보면 자의적인 경쟁력 향상 없이도 무역의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경쟁력을 비롯한 잘못된 국제경제학적 '상식'들은 경제학을 깊이 공부한 학자가 아닌 정치가, 정책가 또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만들어난 환상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국제무역에 관한 일반적 인식이 지배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덧붙여 그들은 스스로가 깊이 안다고 확신할뿐더러, 국제무역에 관계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믿도록 하지만 실제로 세계경제에 관해서는 가장 기초적인 원리와 사실도 모른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p.115)


이런 식으로 저자는 국제경제학에 대한 오해를 하나하나 풀이하며, 궁극적으로 경제를 이해하고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교과서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뜻 보기에 너무 간단한 해결책이라서 학자로서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좋은', 아니 이보다 더 나은 해답은 없다. 왜냐하만 수학이 그러하고 물리학이 그러하듯이 경제학 역시 원리와 이론에 입각한 학문이며, 이러한 원리와 이론 없이 어떠한 주장이나 설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가와 정책가, 작가들은 마치 경제학이 무슨 미신이나 소문이라도 되는 양 자신의 관점에 맞는 부분만 골라서 해석하고 인용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자기와 같은 학자들이 직접 나서서 대중매체에 글을 쓰고 책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출간 당시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저자가 1990년대 중반 당시만 해도 성장 일로를 걷던 동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 이른바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는 곧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이 나오고 얼마 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 위기를 맞았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직업의 미래에 대해서도 예측한 바 있다. "세금 전문 변호사들이 해야 하는 일 가운데 대부분을 전문 시스템 소프트웨어가 맡아 처리하게 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에도 정원손질, 집안청소와 같은 몇천 가지의 잡다한 서비스 때문에 인간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고, 그들이 하는 이런 진짜 힘든 일에 대한 보수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며. 단순한 소비자 상품의 값이 계속 하락함에 따라 지출에서 차지하는 서비스에 대한 지출의 비중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p.261) "농업, 제조업, 일부 비인격적인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이 아주 높아졌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 경제가 점점 더 다른 일, 즉 '교역 불가능' 활동에 치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이 이른바 '비기반' 고용부문이며 현대 도시 인구의 대부분이 이 분야에서 일한다." 즉 재화가 아닌 전문 서비스를 생산하는 직업에 대한 수요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교역 불가능한 산업 부문, 특히 서비스 부문이 훨씬 더 성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자유무역이 개인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업과도 연관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은 새로운 발견이다. 중국인 보모, 가정부를 고용하기 위해 맞벌이를 하는 부부의 삶은 앞으로 더 나아질까? 휴대폰이나 컴퓨터처럼 '교역 가능한' 재화를 생산하는 제조업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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