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발명 마니아 - 유쾌한 지식여행자, 궁극의 상상력! ㅣ 지식여행자 9
요네하라 마리 지음, 심정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발명까지는 아니고 리폼이나 재활용에는 관심이 많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싹둑싹둑 자르거나 이어 붙여서 만들어 쓰기도 하고, 옷도 직접 수선해서 입기도 한다. 리폼과 발명의 차이가 뭘까 생각해보니 이미 세상에 나와있는 물건을 직접 만드는 것이 리폼이라면, 세상에 없는 물건을 생각해내거나 만드는 것이 발명인 것 같다. 그러므로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들어낸 적은 없는 나는 '리폼 마니아'일뿐, '발명 마니아'의 경지에 오르려면 한참 멀었다. 나의 멘토, 나의 롤모델 요네하라 마리는 생전에 '발명 마니아'였다고 한다. (역시 그녀는 한수위다.) 그녀의 동생에 따르면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발명 아이디어가 따오르면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고. 사실 나는 그녀가 발명에 관한 책을 썼다고 해서 의외였다. 그야 전공인 러시아어 외에도 여러 언어에 조예가 깊고, 언어뿐 아니라 문화, 역사, 정치, 예술 등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지만, 발명은 왠지 그녀의 취미라기에는 생뚱맞은 것 같았다. 그러나 <발명 마니아>를 읽으면서 섣부른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발명 마니아>는 그녀가 일생에 걸쳐 고안한 발명품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소개한 책이다. 명색이 발명에 관한 책인만큼 '유실물 내비게이션', '밥 먹여주는 로봇', '멍멍 순찰대', '유괴 방지 기계', '흡연자도 비흡연자도 좋아할 담배' 등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할 법한 발명품, 누구나 한번쯤 이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봤을 법한 발명품들이 백 개 가까이 소개되어 있다. 수많은 발명품 중에서도 반려동물과 그들의 동거인을 위한 발명품이 많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여러 마리의 강아지, 고양이와 함께 산 동물 애호가다웠다. 발명이라는 것이 어느날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절박한 필요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책은 여느 발명에 관한 책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요네하라 마리가 누군가? 일본이 자랑하는(?) 독설의 여왕이다! 그 명성(!)답게, 후반부로 갈수록 순수한 '발명품'보다는, 점점 우경화되는 일본 정부와 미국 부시 행정부(책에 실린 글 대부분이 2000년대 초중반에 쓰였다.)를 비판하기 위한 목적의 발명품이 훨씬 많이 소개되어 있다. 가령 재해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아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낸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자연재해를 뻔히 예상한 데다가 일본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일본이란 나라가 생기기 전부터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이 무수한 피해 경험을 축적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도 많은 인명을 어이없이 잃는 나라가 '선진국'일 리가 없으련만."(p.186) 이라는 비판과 함께 자구책으로 물에 뜨는 자동차, 바다에 뜨는 집을 소개하는가 하면,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연이어 일으킨 부시 행정부에 대해서는 "기왕 이렇게 된 것, 아예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일제히 미국에 합병되버리면 어떨까? 그야말로 궁극의 팍스 아메리카나다. 인류 전원이 미국 시민이 돼버리면 미국인 전사자의 목숨과 공격 대상 국민의 목숨의 가치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는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공격 대상국 자체가 없어지니 전쟁을 일으킬 이유 또한 사라질 것이다." (p.383)라며 냉소를 날린다. 역시 요네하라 마리다.
책에는 그녀가 난소암 투병 당시에 쓴 글도 다수 실려 있다. 그 때문인지 '이렇게 하면 암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이 치료법을 암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등 절박한 심정이 담긴 발명품과 '내가 나이들면 이런 것이 발명되지 않을까', '앞으로는 세상이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 등 희망과 긍정적인 기대가 담긴 발명품이 자주 보였다. 투병 중에도 발명과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녀의 열정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그러나 결국 그녀가 2006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미래를 영영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