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의 산업사회의 미래
피터 드러커 지음, 안종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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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 그는 명실상부한 20세기 최고의 경영학자이지만,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역사학, 정치학, 철학, 심리학 등 여러 학문을 독학으로 마스터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흔히 경영학 하면 사회과학의 분과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정치학이나 심리학 등 다른 학문에 비해 인문학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가 1942년에 쓴 유일한 사회 이론서 <피터 드러커의 산업 사회의 미래>를 읽으면서 그것은 편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무기력한 유럽의 실상을 분석하고 산업 사회에 대한 전망을 경영학적 논의로 연결하여 반세기 넘게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경영학의 고전이다. 이제까지 피터 드러커의 저서라고 하면 경영학이나 자기계발 분야의 책만 읽어서 다른 학문에 그가 얼마나 해박하고 통찰력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설파한 경영학 이론과 자기계발에 관한 담론이 어떠한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박식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먼저 저자는 이상적인 사회상(像)으로 '기능적인 사회'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과연 어떤 사회가 기능적인 사회인가에 대한 논의를 펼친다. 우선 그는 19세기 중상주의 사회와 20세기 산업사회, 그리고 1930년대 독일 나치주의로 이어지는 서구 사회의 역사를 통해 기존의 사회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그는 19세기 유럽 국가들이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다가 실패한 예를 들며 결국 역사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적 구조와 권력이라고 보았다. "전통적인 중상주의 이론은 독점 기업이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새로운 독점 기업을 공격할 근거가 없다. 이 이론은 현대 대기업에서 중요한 것은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구조와 권력의 문제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 (p.80) 그 후 등장한 산업사회는 초창기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대두된 것이 놀랍게도 독일 나치주의였다. "나치주의의 본질이 서구 문명의 보편적인 문제, 곧 산업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며, 나치주의자가 이런 시도의 근거로 삼은 기본원리가 결코 독일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리고 무엇에 대항하여 싸우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기능적인 산업사회를 노예제와 정복의 토대 위에 세우려는 시도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p.29) 저자는 나치주의가 자유주의를 기반하는 산업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보고, 나치주의의 재등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산업 사회를 보다 개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의 많은 부분이 나치주의를 비롯한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라서 경영학보다는 정치학, 역사학에 관한 책 같은 느낌이 들지만, 결국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혀 경영학의 목적을 다시 세우고 산업사회의 지향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어디까지나 경영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책으로 볼 수 있다. 경영학은 기업 경영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고, 기업 경영의 목적은 이윤극대화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고, 경영학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온다. 그러나 저자는 "기업은 사유재산권이 사회적 지위와 기능을 제공하고 정당한 힘을 창출하는 영역인 19세기 독립적인 사회 영역의 조직으로서 힘을 갖게 됐다. 따라서 현대 기업은 정치 조직이다. 기업의 목적은 산업 영역에서 정당한 권력을 창출하는 것이다." (p.84)) 라고 말하며 기업이 이윤 추구가 아닌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사회적, 정치적인 한계 내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인간은 물질적 성공을 통해 자신을 풍요롭게 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는 실패했다. (중략) 우리는 경제적 인간 개념을 대신하여 인간의 중요한 윤리적 목적이 무엇인지, 인간 본질의 중요한 개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pp.278-9) 라며 인간의 존재 이유 역시 보통 경영학에서 상정하는 경제인,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라 윤리적, 사회적 존재라고 역설했다. 저자가 이미 1940년대에 현대 경영학의 한계와 지향점까지 예측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기능적인 사회'란 산업적 현실을 통합하여 각 사회 구성원의 기능과 지위를 보장하는 사회를 말하는데, 이 사회는 그저 시장을 내버려둠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 사회적, 정치적인 역할을 인식하고, 개인 역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조직으로서 기업을 바라볼 때 이룰 수 있다고 한다. 현대 기업인들도 쉽게 하지 못하는 발상을 반세기 전에 저자가 이미 했다는 점이 놀랍고, 왜 저자의 이런 혜안이 현대 기업에는 적용이 안 되고 있는 것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까지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그저 기업을 경영하는 방식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역사학, 정치학 등 여러 학문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사회 이론으로서도 손색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또한 피터 드러커의 이러한 연구 결과가 재평가되어 현대 산업사회를 살고 있는 기업과 개인들에게 현실을 보완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좌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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