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 우리시대의 신앙이 되어버린 '발전'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
질베르 리스트 지음, 신해경 옮김 / 봄날의책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정치학, 경제학, 인류학, 환경학은 들어봤지만 '발전학'이라니! 그야 발전이라는 말 자체는 수없이 많이 들어봤지만, 발전을 연구하는 학문, 즉 '발전학'이라는 것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발전학의 대가' 질베르 리스트는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국제 발전학대학원의 명예교수다. 그의 저작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은 발전학의 정의와 역사 및 발전에 대한 담론에 대해 설명한 '발전학의 고전'이다. 발전학이라는 용어 자체는 생소했으나, 발전학이 기초하고 있는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등의 사상은 널리 알려진 편이고,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개발도상국이었으며 여전히 '개발' 담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한번쯤 들어봤고 고민해봤던 문제에 관한 책이라서 내용 자체는 크게 낯설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발전이라는 용어 자체가 서구 근대화 과정에서 생성된 창조물이자 발명품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발전'이라는 용어는 이점이 많았다. 과학용어의 하나로서 이미 상당한 관록을 자랑하고 있었고, 무언가가 바람직하게 전개되기 위해서는 먼저 전제조건들을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을 기정사실화할 수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신화로부터 이어지는 하나의 사상적 전통과 밀접하게 연관되었으므로 그로부터 정통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p.63) 계몽주의 사상의 발현과 함께 시작된 발전의 '신화'는 19세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의 기반이 되었으며,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패권국인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발전국과 저발전국으로 나누어 '관리'하는 데 기여했고, 각 국가들의 정부 내지는 정책 형성의 이념으로서 작용했다.


사실상 민족국가의 형성, 근대화, 냉전 등을 모두 거친 나라라면 발전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세 가지를 모두 거친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더 많은 것이 반드시  더 좋은 것이라는 경제적 반계몽주의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p.387)는 생각은 발전학계를 넘어 정치학, 경제학 등 학계 전반에서 널리 인정받는 사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발전의 신화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기정사실처럼 여겨져 온 '신화' 내지는 '신앙'을 하루아침에 없애기는 쉽지 않겠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는 이러한 시도 자체가 계속 이어져가고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의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장 어려운 과제는 지식이 신앙을 이겨내도록 만드는 것이며, '발전' 이후에도 삶이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다." (p.387) 주류 경제학뿐 아니라 주류 전반, 기득권층 전반의 생각에 무조건 동조하는 것이 왜 나쁜지, 또 다른 세상은 왜 가능하며 필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