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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변호사들 - 대한민국을 뒤흔든 노동 사건 10장면
민주노총 법률원.오준호 지음, 최규석 만화 / 미지북스 / 2013년 4월
평점 :
변호사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명품 브랜드 수트에 고급 외제차를 타고 으리으리한 빌딩에서 근무하는 모습, 높은 학벌과 사회적 지위, 엘리트 의식, 사회 고위층의 특권을 보호하기 위한 집단 등등 그다지 좋은 인식은 없다. 그러나 여기 명품 수트에 외제차는커녕, 슬럼프와 우울증,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박봉과 열악한 근무조건을 감수하는 변호사들이 있다. 바로 국내 최대의 노동자 지원 법률단체 '민주노총 법률원'이다. 2002년 민주노총 부설 기관으로 설립된 이래 2006년 KTX 여승무원, 2007년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2010년 MBC 노조 파업, 2011년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 등 한국 사회의 주요 노동 사건 지원에 참여한 이 단체가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하여 지난 10년간 법률원이 함께한 노동자들의 투쟁의 기록으로서 만들어진 책이 바로 이 책 <노동자의 변호사들>이다.
이 책에는 앞서 언급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 MBC 노조 파업 등을 비롯하여 홍익대 청소, 경비 노동자 집단 해고 사건, 쌍용자동차 정리 해고 사건,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해고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노동 사건의 경과와 변호사들의 후일담 등이 담겨 있다.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단편적으로 접했던 사건들을 자세하게 알 수 있을뿐 아니라 변호사들에게 어떤 애로사항이 있었는지까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노동 문제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막상 문제가 생기면 직접적인 당사자도 아니고 관계자도 아니기 때문에 들리는 것만 알지 자세히 알아보려는 노력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는 알아도 그 사건이 왜 일어난 것인지, 어떻게 판결이 내려졌고 어떤 과제가 남았는지 등에 대해서는 몰랐다. 나 역시 노동자이고 노동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왜 막상 문제가 생기면 내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 무관심했을까? 반성해본다.
가장 놀랐던 것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변호사의 수가 민주노총 법률원만 해도 서른명이 채 안 된다는 것이다. 일 년에 사법고시 합격생이 천 명을 넘고 로스쿨 졸업생 수는 그보다 많은데, 그들 중 극히 소수만이 몇 백만 명에 이르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마지막 장에 실린 <100도씨>, <대한민국 원주민>, <습지생태보고서> 등을 그린 최규석의 만화를 보면서 착잡한 기분이 한층 더했다. 돈이나 명예가 아닌,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겠다는 의지와 양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고 감동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울하고 슬펐다. 왜 사회는 이런 사람들을 더 대접하지 못하고 주목하지 않는 것일까? 노동자, 변호사, 예비 법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