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리에서 온 낱말 - 크루아상, 톨레랑스, 앙가주망 우리 옆에 숨쉬는 프랑스와의 지적 조우
최연구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한국인 중에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 수야 많겠지만 영어나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의 수에 비하면 훨씬 적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생활 속에 프랑스어의 흔적은 의외로 많다. '모나미(프랑스어로 '친구'라는 뜻)' 펜부터 화장품 브랜드 '라네즈(눈)', '마몽드(나의 세상)', 과자 이름 '몽쉘통통(나의 친애하는 아저씨)', '뽀또(단짝)', 베이커리 브랜드 '뚜레주르(매일매일)' 등 누구나 알 만한 이름들의 어원이 프랑스어다. 뿐만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 메세나, 방카쉬랑스, 데탕트, 톨레랑스 등 방송이나 언론 등을 통해서 접하는 용어 중에도 프랑스어가 참으로 많다. 가히 프랑스어는 이제 일상이라고 해도 좋겠다.
<파리에서 온 낱말>은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프랑스어 낱말을 통해 프랑스의 역사와 예술, 문화 등을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 최연구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후 프랑스 파리7대학에서 정치사회학 학위, 마르느 라 발레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다. 2000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한국외대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거쳐 현재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미래융합기획 실장으로 있다. 프랑스 유학파답게 프랑스어는 물론 문화, 역사, 정치 등에 정통한 저자가 쓴 책이라서 그런지 내용에 깊이가 있고 화제도 다양했다. 프랑스어를 알기는커녕 프랑스에 대해서도 관심만 있지 아는 것은 별로 없는 나조차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먼저 저자는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술 와인을 비롯하여 카페, 바게트, 미식 문화, 뮤지컬, 샹송 등 비교적 가벼운 주제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레스토랑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가 인정한 프랑스 스타 셰프가 점수 하락을 비관하여 자살한 이야기를 통해 프랑스에서 식문화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 수 있었고, 지역마다 음식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프랑스인들은 매일 어떤 음식을 먹는지 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특히 <그리스인 조르바>의 명대사 '네가 뭘 먹는지를 말해주면 네가 누군지 말해주겠다'가 다름아닌 프랑스의 전설적인 미식가 프리야 사바랭의 책 <맛의 생리학>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놀랐다. 조르바가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긴 역사(?)와 깊은 뜻이 담겨 있었을 줄이야!
후반부는 프랑스 사회와 한국 사회에 관한 묵직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노블레스 오블리즈, 톨레랑스 등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지만, 몇 년 전 한국어판을 낸 프랑스 언론을 대표하는 일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창립 배경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이 신문은 신문 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국제문제에 큰 비중을 둔다. ('디플로마티크'는 'diplomacy(외교)'를 뜻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가 독일에 패한 이유를 이웃나라 독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몰랐던 '프랑스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p.166) 우리나라 역시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던 경험이 있는데 국제문제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신문만 보아도 국제면은 늘 정치, 경제, 사회면보다 뒤에 있다. 반성할 일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