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
오쿠다 히데오 지음, 정숙경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콩나물 시루처럼 꽉 들어찬 지하철 안에서 내 발을 밟고도 모른 척 하는 사람, 회사에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상사나 동료 등등 세상엔 싫은 사람 천지지만, 그 사람들도 한때는 코흘리개 소년, 깍쟁이 소녀였고, 그 전에는 기저귀 차림으로 방바닥을 기어다니던 아기였다는 생각을 하면 화가 스르르 풀린다고 말이다.

 

일본작가 오쿠타 히데오의 단편집 <마돈나>의 주인공들은 싫은 사람 천지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마돈나>의 40대 직장인 하루히코는 새로 부서에 들어온 여직원 구미코의 환심을 사려는 남자 후배가 싫고, <댄스>의 요시오는 대입을 포기하고 댄서가 되겠다는 아들과 독불장군 동료직원 아사노가 싫다. <총무는 마누라>의 히로시는 잘못된 관행을 옹호하는 부하와 상사들이 싫고, <보스>의 시게노리는 엘리트 출신 여자 상사가 싫다. 이 사람은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고...... 그렇게 이유를 찾다보니 마음은 점점 굳고, 하는 일마다 트러블이 생긴다.

 

하지만 오쿠타 히데오가 누구인가? '닥터 이라부'로 유명한 나오키상 수상작 <공중그네>를 통해 또 다른 인간상, 또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가다. <걸>과 <마돈나>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인공들이 증오를 품은 채 계속 살거나 남을 향해 공격을 한다면 비극으로 끝났겠지만, 오쿠타 히데오는 결코 그렇게 두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공들은 뜻밖의 사건을 통해 싫어했던 사람의 의외의 면을 보고 화를 푼다. 되려 싫어했던 그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더욱 좋아하게 된다.

 

어쩌면 그들은 남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싫어했던 건지도 모른다. 한때는 잘생겼고, 잘나갔고, 멋진 꿈이 있었으나,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살다보니 평범한 직장인, 배나온 아저씨가 되어버린 자기 자신이 싫었던 것이다. 그런 자신의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을 가까운 사람에 대한 증오로 풀었다. 발을 밟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얼굴을 돌리는 사람들, 나에게 심한 말을 내뱉고 귀찮은 일을 떠맡기는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나 <마돈나>의 인물들은 증오를 통해 한 단계 성숙했다. 증오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고, 무언가를 몹시 미워하는 마음은 좋아하는 마음과 한끗 차이다. 미워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나니 자기 자신이 못견디게 사랑스럽고 주변 사람들이 좋게 느껴졌다. 비록 아무로 나미에의 결혼과 임신이 세간을 뜨겁게 하고, 모닝구 무스메의 '낫치' 아베 나츠미가 최고 인기 멤버였던 시절의 소설이지만 '오쿠타 히데오 월드'는 여전히 유쾌하고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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