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말이 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는 바로 결혼이다. 옛날에는 관혼상제의 전통 때문에 성년이 지난 남녀가 결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이제는 결혼을 하지 않는, 이른바 '비혼'이라는 선택지도 있고, 이혼과 재혼도 흔한 일이 되어 예전만큼 결혼을 중시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는 전처럼 '언제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가' 만 고민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왜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인가' 등등 선택지가 늘어난만큼 고민거리도 늘어났다. 그래서일까. 선택하기 전에 고민하다지쳐서 결혼 포기, 연애 포기인 사람, 주변에 널려 있다. 결혼에 대한 고민은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쪽이 더 클 것이다. 만약 결혼을 한다고 해도 출산을 하면 어떻게 하고, 육아는 어떻게 할지, 그렇다면 일과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고민할 거리가 두세배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 적령기의 2,30대 여성들은 힘들다. 내가 그렇다.

 

오쿠타 히데오의 단편집 <걸>에는 결혼과 일 사이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띠동갑>의 30대 여직원 요코는 띠동갑 연하 신입사원을 짝사랑하고 있는데 고백을 할지 말지 선택해야 한다. <히로>의 세이코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과장으로 승진했지만 내심 아이를 가지길 원하는 남편의 눈치를 보고 있다. <걸>의 유키코는 나이트 클럽에서 더 이상 남자들의 추파를 받지 못한다는 현실에 망연자실한다. <아파트>의 유카리는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줄곧 월세집을 전전하다가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발견하고 살까말까 고민한다. <워킹맘>의 다카코는 영업부에서 일을 잘 해보고 싶지만 이혼 후 혼자 키우고 있는 아들 걱정이 태산이다.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결혼과 육아가 그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결혼과 육아가 아닐지도 모른다. 진짜 문제는 더 이상 '걸(girl)'이 아니라는 것 - 젊은 시절의 순수하고 예뻤던 그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닐까? 아직 마음은 멋진 남자를 보면 소녀처럼 설레고, 하고 싶은 일, 즐기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만하라고 질책하니 답답한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이돌 그룹이나 젊은 배우들을 보면 마음이 두근거리는데 프로필을 찾아보면 한두살이 아니라 열 살 가까이 어린 경우도 많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몇 살이니까, 이제 곧 삼십대니까, 돈 벌어야 되니까, 시집갈 준비해야 하니까 등등의 이유로 만류당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해서 어렸을 때 좋아하는 사람 다 만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 다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여자는 어떤 일에서도 행복을 찾는 종족이라고 했던가. <걸>의 여성들도 결국은 현실에서 행복을 찾아낸다. 나이에 대한 강박, 결혼과 육아에 대한 부담에서 조그만 눈을 돌리면 나를 인정하는 사람들,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고,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 어쩌면 여자가 가장 원하는 것은 남편도 아이도 아니요,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도 변치 않는, 소녀 같은 마음씨인지도 모르겠다. 멋진 남자를 보면 잘 보이고 싶고, 예쁜 것을 보면 마음이 설레고, 작은 일에도 까르르 웃거나 눈물을 흘리는 소.녀.감.성. 그것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여자의 행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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