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공부 - 창의성의 천재들에 대한 30년간의 연구보고서
켄 베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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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공부하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었다. 아버지는 국가고시를 준비하느라 퇴근 후 방안에서 공부를 하셨고, 그동안 어머니와 나, 동생은 조용히 책을 읽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나서 어머니는 1년 동안 출판사에서 영업 일을 하셨는데, 안그래도 책 읽기가 일상화된 집에서 어머니가 일 핑계 삼아 책을 많이 구입하시니 집 전체가 도서관처럼 바뀌었다. 동화책, 위인전, 과학전집, 사회과전집, 소설전집 등 없는 책이 없어서 나와 동생은 하루 종일 집에서 책을 읽었다. 덕분에 따로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학교 공부가 수월했고, 성적도 늘 좋았다. 


그러나 고학년이 되면서 공부 환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하는 공부는 내 페이스대로 진행되는 반면,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학교 커리큘럼과 다른 아이들의 진도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집에서 하는 공부는 깊이 알고 싶은 내용은 더 깊이 공부하고, 그만하고 싶은 공부는 그만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반면,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자율성이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집에서 하는 공부와 달리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성적이 매겨지기 때문에 이해 여부와 무관하게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는 점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학교 과목이 내가 좋아하는 국어와 영어, 사회과학 위주라서 그나마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지, 만약 내가 이과였다면, 다른 과목을 공부해야 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좋아하는 공부,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자유롭게 공부했더라면 지금처럼 평범한 사회인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켄 베인의 <최고의 공부>를 읽으면서 공부의 의미와 목적, 가장 효과적인 공부법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저자 켄 베인은 EBS <최고의 교수>에서 마이클 샌델을 비롯한 8인의 석학을 직접 선정한 "교수들의 멘토"로, 역사학 교수이자 현재는 University of the District of Columbia의 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책에서 먼저 세 가지 기본적인 학습자 유형을 소개한다. 첫째 '피상적 학습자'는 배운 내용을 활용하기 보다는 시험을 통과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수동적인 학습자 유형이다. 둘째 '심층적 학습자'는 열정적으로 분석, 종합, 평가, 이론화 같은 기술을 사용하는 능동적인 학습자 유형이다. 셋째 '전략적 학습자'는 졸업하고 인정받는 데에만 골몰하는 학습자 유형이다. 가장 바람직한 학습자 유형은 단연 '심층적 학습자'다. 그러나 어떤가? (거울을 포함하여) 주변을 둘러보면 피상적 또는 전략적 학습자가 훨씬 더 많이 보인다.


저자는 학습자의 잠재성을 이끌어내고 능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교수법으로 폴 베이커의 '능력의 통합'이라는 강의를 예로 든다. 이 강의에서 폴 베이커 교수는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자질과 경험의 진가를 깨달음으로써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받았다.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은 공부의 목적이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자질과 경험을 활용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 연설에서 언급한 'connecting the dots'를 예로 들 수 있다. 잡스는 이 연설에서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캘리그라피를 배웠던 경험이 훗날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것, 끌리는 것, 좋아하는 것 - 이 모두는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과 자질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지표들을 어떻게 발견하여 공부 또는 일과 연결시키느냐에 따라 공부의 질, 일의 질, 인생의 질이 수백 배, 수천 배는 높아질 수 있다.


책에는 제프 호킨스, 데이비드 프로테스 등 수많은 성공적인 학습자들의 예가 소개되어 있다. 그 중에는 엘리자 노 라는 한국계 여성의 사례도 있다. 그녀는 한국인 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과 엄격한 학교 시스템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언니의 죽음을 계기로 전략적 학습자 유형에서 벗어나 심층적 학습자로 거듭났다. 비록 결과는 좋게 났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적 지향적 교육 방식의 폐해를 보여 주는 사례 같아서 안타깝고 가슴이 철렁했다. 이런 사례만 보아도 공부는 단순히 부모 뜻대로 하거나 학교나 학원 같은 전문기관, 교육제도에 맡긴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공부의 주체는 학습자이고, 부모나 교사는 길잡이 역할밖에 할 수 없다. 길잡이가 알려달라는 길은 알려주지 않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가면 좋은 길잡이라고 할 수 없다. 최고의 공부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학생과 부모, 교사, 사회인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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