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누구나의 인생 - 상처받고 흔들리는 당신을 위한 뜨거운 조언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홍선영 옮김 / 부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이 하루에 하는 말을 빠짐없이 세면 어느 정도나 될까? 가족, 연인, 친구와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상사나 동료와 나누는 일적인 대화에, 길가에서 부딪친 사람에게 건네는 미안하다는 말, 가게 아주머니에게 건네는 고맙다는 말까지 모두 더하면 몇 천, 아니 몇 만 단어는 될 것이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말을 해도 하지 못하는 말이 누구에게나 있다. 아주 가까운 연인이나 친구에게조차 털어놓기 힘든 어린시절의 상처나 가족으로 인한 고통, 연애 고민,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성적 취향 등등...... 어쩌면 사람이 말로 표현하는 것은 품고 있는 감정이나 추억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처와 고통, 고민이 쌓여 터져버릴 것 같을 때, 어떤 사람들은 정신건강과학 전문의나 카운셀러에게 상담을 구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신문이나 잡지 등의 고민 상담 코너에 사연을 보낸다. 최근에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웹진 등의 고민 상담 코너를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안녕, 누구나의 인생>도 바로 온라인 문학 커뮤니티 '럼퍼스'의 상담 코너 '디어 슈거'에 소개되었던 글을 모은 책이다. 2010년 3월부터 2년 넘게 '슈거'라는 애칭으로 커뮤니티 멤버들의 사랑을 받았던 카운셀러의 정체는 다름아닌 베스트셀러 <와일드>의 작가 셰릴 스트레이드였다. 현업 작가가 정체를 숨기고 일반인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카운셀러로 나선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 싶을만큼 재미있는 설정인데 실화라니 더욱 재미있다.

 

상담을 요청한 사람들의 고민은 각양각색이다. 연애 문제, 결혼 문제, 진로 문제 같은 흔한 고민부터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라든가 해결하기 힘든 가족 간의 갈등, 불륜, 성적 취향 고민 등 묵직한 문제까지 다양하다.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전업 카운셀러도 아니지만, 작가는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따끔하게 상담을 해준다. 놀라웠던 점은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내밀한 경험까지 내보이며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아버지로부터는 버려지다시피 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돈을 벌기 위해 웨이트리스를 비롯해 각종 직업을 전전했고, 어머니의 죽음과 이혼 등 힘든 일을 연이어 겪었다. 그러나 결국 작가의 꿈을 이루었고, 대학도 마쳤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두 아이를 낳고 멋진 가정을 이루었다. 인생의 밑바닥을 기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 냄새나는' 조언을 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그 어떤 심리학 서적이나 전업 카운셀러가 쓴 글을 읽을 때보다도 큰 감동을 느꼈다.

 

"편지에서 가장 마음을 끄는 것은 당신이 보여 준 그 모든 불안과 슬픔, 두려움, 자기혐오 아래 한가운데에 오만함이 깔려 있다는 거에요. 그 오만함 때문에 당신은 스물여섯에 성공해야 한다고, 실제로 성공하려면 훨씬 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작가들이 많은데도 자신만은 일찍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중략) 기대치가 하늘을 찌르니 툭하면 좌절할 수밖에요. 이런 생각은 어떤 일을 성취하는 데에 하등의 도움이 안 됩니다." (pp.53-4) 작가 지망생이라고 밝힌 사람에게 저자가 남긴 말이다. 비단 글쓰기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그녀의 말을 적용해 볼 수 있다. 나는 실연을 하면 안 되고, 나는 실업자가 되면 안 되고, 나는 재수생이 되면 안 되고, 나는 살이 찌면 안 되고, 나는 못생기면 안 되고...... 이런 부정적인 생각의 이면에는 오만함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무조건 연애에 성공해야 하고, 결혼도 잘 해야 되고, 취업도 잘 해야 되고, 대학도 잘 가고, 날씬하고, 잘생기고...... 왜 나만 좋아야 하는가? 좋은 일은 좋은일대로 감사하게 여기고, 안좋은 일은 안좋은일대로 수긍하고 받아들일 때 사람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어쩌면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지 않았나 반성해 보게 된다.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남자친구에게 밝힐지 말지 고민하는 여성에게, 작가는 성폭행을 세 번 당했으나 화가로 성공한 친구의 말을 인용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 영향을 받을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때가 와. 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날 망쳐 버린 세 남자에게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반 고흐에게 영향을 받을 수도 있었어. 난 반 고흐를 택했어." (p.166)  이 문장 역시 성폭행뿐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모든 비극적인 일들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실연, 이혼, 취업실패, 불합격, 추한 외모, 작은 키 등등..... 사람은 살면서 수없이 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그러나 그 난관들이 자신의 삶을 규정하게 놔둘지,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고 이겨낼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몫이다. 어려운 이론이나 딱딱한 설명 없이, 오로지 자신의 경험과 지인들의 사례를 통해 인생의 교훈을 주는 작가의 힘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이 좋아서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볼 생각이다. 익명으로 쓴 상담글도 이렇게 좋은데,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쓴 소설들은 얼마나 감동적일까? 이 봄, 상처받은 마음에 새살이 돋기를 기대하며 읽기에 참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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