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현진 옮김 / 한길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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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은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읽느라 바쁘지만, 십년 전만 해도 가장 좋아하는 고르라면 고민하지 않고 시오노 나나미의 이름을 댔다. 그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그녀가 쓴 책들을 모두 구입해서 읽기에는 돈도 부족하거니와 시간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시간이 생기면 학교 도서실과 동네 도서관을 오가며 그녀의 책을 빌려 읽었다. 그 때의 기억이 한(!)이 되어, 지금도 틈틈이 그녀의 저작들을 모으고 있다. 비록 당장 읽고 싶은 책이나 신간 때문에 뒷순위로 밀리는 일이 허다하지만, 조만간 <로마인 이야기>도 전권을 다 모을 것 같고, 그 외의 책들도 부지런히 구입하면 전부 구입할 수 있을 것 같다.


파릇파릇했던 십대 시절에 시오노 나나미라는 중년 여성의 글에 이끌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있고, 또래 친구들이 잘 읽지 않는 책을 읽는 데에서 비롯된 지적 허영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 오랜만에 그녀의 산문집 <남자들에게>를 읽으면서, 그녀 특유의 솔직함과 섬세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는 답을 얻었다.


이 책은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남성의 스타일, 매력 포인트, 관계, 관능, 언어 등을 주제로 하는 산문집이다. 학창 시절 게리 쿠퍼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브로마이드 세 장을 고르고 고른 끝에 샀다는 귀여운(!) 고백부터, "굉장히 비싼 스웨터를 다 해진 청바지에 받쳐입는" 남자는 싫다든가, 자신이 후원사 사장이 된다면 칼 루이스의 완벽한 몸매를 대대로 전하기 위해서 사진집을 만들 것이라는 등의 도발적인 발언까지, 매우 다양한 글이 실려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성(性)은 물론 개인 취향과 기호에 관한 이야기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적으로 발언하기에는 지나치게 사적인 견해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비록 그녀와 취향이 같지는 않지만,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속시원한 기분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양성평등도 좋고, 마초도 좋고, 페미니스트도 좋지만, 결국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는 행위 - 멋부리기, 공부하기, 돈벌기 등등 - 는 모두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여자는 무엇을 통해 사랑을 느끼는지, 남자가 어떻게 하면 여자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 이런 이야기를 그저 어느 여류 소설가의 잡문으로 치부한다면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렇게 자신의 취향을 분명히 안다는 것은 그만큼 섬세한 감각과 예리한 관찰력을 지녔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녀는 주류 또는 대세에 쉽게 영향을 받지 않고, 타인의 취향에 관심이 많지도 않다. 그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결국 이 책은 남성에 대한 책이면서, 남성을 매개로 하여 쓴 시오노 나나미 자신에 관한 책인 셈이다.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를 더욱 가깝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고, 나의 취향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녀처럼 남성을 매개로 나의 이야기를 쓰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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