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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철들지 않는다 -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기억을 통한 삶의 위로
이성규 지음 / 아비요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보물 하면 비싼 보석이나 돈, 재산 같은, 금전적인 가치로 따질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보물은 '추억'이 아닐까? 특히 어린 시절의 추억은 그 어떤 보석이나 재산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다. 여름날 밀린 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 친구집에 모였다가 떠들고 놀기만 했던 기억, 겨울날 눈쌓인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며 놀던 기억, 조금 커서는 쉬는 시간, 점심 시간마다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에 열광하던 기억... 그런 기억들이 모여 만들어진 추억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지고 소중하다.
[소년은 철들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마치 저자 이성규의 보물상자를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바로 추억이 곧 보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1950년대 말에 태어나 60년대 중반에 유년기를 거친 전형적인 베이비부머 세대인 저자 이성규가 면소재지의 시골에서 국민학교를 다니다가 어머니의 교육열에 이끌려 서울로 전학을 가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나는 저자와 같은 세대도 아니고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지도 않았지만, 마침 저자가 나의 아버지와 같은 세대이고, 아버지 또한 학생수가 몇 안 되는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분이라서 아버지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푹 빠져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이건만, 나의 유년시절 모습과도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예방주사 맞는 날이면 학교 가기 전부터 두려움에 벌벌 떨었던 기억, 주사를 먼저 맞은 친구가 대단하게 보였던 기억, 소풍날 메인 이벤트인 보물찾기 시간에 기를 쓰고 보물을 찾아다녔던 기억, 교실에 커튼을 해올 사람을 찾는 선생님의 모습, 실컷 놀다가 방학 끝 무렵에 태산 같이 쌓여있는 숙제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 시험 성적 때문에 고민하던 기억 등등... 어쩌면 요즘 아이들도 공감할지 모르겠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어느 한 구석 그런 성숙한 모습이라곤 전혀 없다. 언제나 생각은 유치찬란했고, 어려운 일이라면 몸을 사리고 늘 피해다녔다. 가끔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뻔한 거짓말도 했다. 심지어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까지도.' [p.8]
본문의 에피소드도 재미있지만, 책 도입부의 '글을 시작하며'의 구절들이 나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왜곡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족들이나 친구들, 선생님들에게 내 어린 시절의 모습에 대해 물어보면 뜻밖에도 내 기억과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오기도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기 모습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인식과 기억도 왜곡되거나 오해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 보다 성숙한 시선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은 중요한 경험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나는 한없이 유약하고 무력한 아이였는데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면 그 때 이미 꽤 성숙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고, 반대로 제법 조숙했다고 느꼈던 자신이 얼마나 유치하고 어렸는지도 알 수 있다. 또한 좋게만 생각했던 사람의 나쁜 면을 떠올린다든지, 반대로 나쁘게만 생각했던 사람의 좋은 면을 알게 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저자처럼 나도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보았다. 유치찬란하고 이기적인 아이였다던 저자의 고백처럼 나 또한 내 기억처럼 착하고 순진하기만 한 아이는 아니었다. 그 순간으로 돌아가 지우고 싶고, 바꾸고 싶은 기억들도 많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 또한 나이고,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다. 소년처럼 소녀도 영원히 철들지 않는 존재이기에, 나이드는 줄 알면서도 시간을 추억이라는 보물로 바꾸기를 그치지 않을테니 말이다.
겨울은 양말 속의 발가락이 시릴 정도로 추웠고, 여름은 종일 냇가에서 놀고 또 놀아도 하루가 무척이나 길었다. 엄청나게 멀어 보이던 윗동네도 지금 와서 보면 겨우 500미터도 안 되는 짧은 거리일 뿐이다. 그때는 윗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왜 그리 먼 곳에 사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같은 장터, 한 동네에 살아도 학교 너머에 사는 아이들과는 쉽사리 어울리질 못했다. 모든 것이 물리적으로 아주 좁은 세계였건만, 그때에는 심정적으로 너무나도 넓은 세상이었다. [p.7 글을 시작하며]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