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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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다 읽은 소설을 좋아하게 된 경우는 많다. 어릴 때 우연히 읽은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소설 몇 권이 내 인생의 행로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몇 해 전에 읽은 책 중에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와 비카스 스와루프의 <슬럼독 밀리어네어>, 샤오루 궈의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도 아주 좋았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도 빼놓을 수 없다. 터키의 민족색이 짙게 묻어나는 내용이라서 이국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도 내용은 사랑과 배신, 질투와 절망 같은 보편적인 감성에 대한 것이라서 읽는 내내 깊이 공감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소설을 읽고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비서구 작가라서 그런지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그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국내에 그의 소설은 여러 권 번역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민음사에서 나온 <소설과 소설가>를 읽으면서 어느 정도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스물두 살 때 어느 날 갑자기 가족과 친구와 아는 사람들에게 "화가가 되지 않겠어요. 소설가가 되겠어요!"라고 말하고 진지하게 첫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어쩌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끔찍한 미래로부터 모두들 나를 보호하려 했습니다.(독자층이 한정된 나라에서 소설 창작에 인생을 바치겠다니!) "오르한, 사람은 스물두 살 때 인생을 알 수 없단다. 나이를 좀 먹고 인생을, 사람들을, 세상을 경험해 봐. 그런 다음에 소설을 써!"(그들은 내가 단지 소설 한 권만을 쓰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말에 크게 분개했고,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소설은 우리가 인생을, 사람을 알기 때문에 쓰는 게 아니에요. 다른 소설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써 보고 싶기 때문에 쓰는 거라고요!" (pp.177-8) 

  

이 책은 오르한 파묵이 하버드 대에서 유서 깊은 '찰스 엘리엇 강의'를 맡은 후 그 강연록을 묶은 책이다. '강연록' 답게 소설과 소설 읽기, 소설 쓰기에 관한 개론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현업 작가'인 파묵의 관점과 견해가 더해져 있어서 나 같은 오르한 파묵 팬 뿐만 아니라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 소설 쓰기를 갈망하는 소설가 지망생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파묵은 책에서 소설은 무엇인가 - 완전한 허구인가, 소설가의 경험이 재현된 것인가 - 에 대한 얘기를 한다. 독자로서 소설을 읽다보면 소설 내용에 심취한 나머지 소설가를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나 화자가 소설가 본인인 양. 사랑하게 되는 건 그래도 낫지만, 작중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으로 소설가를 지레 짐작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생기면 곤란하다. 파묵은 종종 독자들로부터 '파묵 씨, 당신은 이런 것들을 정말로 경험했나요?' 같은 질문을 받기도 하고, '전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요' 라는 둥의 말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소설은 허구인가, 재현인가. 소설가로서는 작품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꼭 물어야 하는 질문인 것 같다. 독자 또한 소설을 읽을 때 소설과 소설가의 거리, 소설과 독자와의 거리를 적절히 지킬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파묵은 이력으로 보나 작품으로 보나 원숙한 작가이면서 동시에 소설과 소설가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매우 진지한 분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 이름은 빨강> 이후로 한동안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는데 이참에 몇 권 더 읽어봐야겠다. 마침 그의 소설은 이 가을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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