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코드 1 : 변신 천계영의 리얼 변신 프로젝트 1
천계영 지음 / 예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패션에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한다는 핑계로 교복, 체육복만 입었고, 그나마 집에서 입는 사복도 순전히 어머니가 당신 취향대로 골라서 사주신 옷뿐이었다. 사람들이 보통 본격적으로 멋부리기 시작하는 대학교 때에는 여대에 다닌다는 핑계로 역시 패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게다가 대학은 여름, 겨울 학기 수업을 듣지 않는 한 봄, 가을에만 다니는데, 봄, 가을에는 입는 옷이 많이 겹쳐서 옷 값이 굳는다고 아주 좋아했다.

 

그러다가 패션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내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힘들게 번 돈으로 사는 옷, 기왕이면 내 마음에 쏙 들고, 좋은 옷으로 사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 때 마침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인터넷 쇼핑몰! 백화점이나 지하상가 같은 오프라인 매장에 가면 점원이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게 너무 싫었는데, 인터넷 쇼핑몰은 그런 일도 없고, 쇼핑몰마다 가격도 비교할 수 있고, 쿠폰이나 적립금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 때부터 하루에 한 번 이상 즐겨찾기 목록에 추가해 놓은 인터넷 쇼핑몰을 순방하는(?) 취미가 생겼고, 매 시즌마다 장바구니를 채우고 비우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패션도 조기교육이 중요한지, 스무살 넘어서 시작한 쇼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나한테 어울리는 옷을 잘 모르는 데다가, 예뻐 보이면 무턱대고 사다보니 제대로 못 입고 버리거나 남에게 주는 옷도 많았다. 가장 황당한 때는 모델이 나랑 비슷한 체형이라고 생각해서 고심 끝에 옷을 구입했는데 사이즈가 애매하게 안 맞거나 핏이 안 살 때. 그 때마다 옷이 문제가 아니라 내 몸이 문제라며 애써 나 자신을 위로하곤 했지만, 대체 왜 옷을 눈으로 볼 때와 직접 입었을 때의 느낌이 영 다른 건지 화가 날 정도였다.

 

+

 

그러다가 만난 책이 바로 <드레스 코드>. <오디션>, <예쁜 남자>의 작가 천계영 님이 D모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 중인 웹툰을 단행본으로 만든 책이다. 천계영 님 하면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바로 그 만화 <언플러그드 보이>를 만든 분으로 기억하는 분도 많을 것 같다. 나 역시 <언플러그드 보이>로 천계영 님의 만화를 보기 시작했고, <오디션>에 열광했으며, 그 이후에도 <DVD>, <하이힐을 신은 소녀> 같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애독해온 팬이다.


사실 처음 <드레스 코드>를 접했을 때 '이 만화가 정말 천계영 님 만화 맞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다시피 천계영 님 만화 하면 모델이나 아이돌 가수를 연상시키는 길쭉길쭉하고 늘씬한 8등신 그림이 떠오르는데, 이번 만화는 3등신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작고 통통한 그림체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패션은 또 어떤지, 천계영 만화 하면 또 떠오르는 게 인물들의 기상천외하고 화려한 패션인데, 이번 <드레스 코드> 속 주인공 '계영'은 거의 늘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 그린 사람은 분명 천계영인데, 천계영 만화 같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왜 작가님이 이번 책에서 이렇게 새롭고 파격적인 시도를 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님의 어린시절 꿈은 바로 의상 디자이너. 중학교 때는 미국에 사는 친구가 보내 준 <VOGUE>지를 닳도록 읽으면서, 잡지 속 8등신, 9등신 미녀들의 몸을 수없이 그리고, 그들의 패션을 따라 그리셨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잡지 속 세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작은 키에 비루한 몸매. 입시 위주의 우리나라 교육 환경상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패션에 신경쓰는 것은 용납될 수 없었다. 게다가 계영 님의 어머니가 패션에 있어 매우 보수적인 분이셔서 여자아이들의 로망인 하늘하늘한 레이스 양말, 공주 같은 원피스는 언감생심 꿈조차 꿀 수 없었다. 그러나 계영 님에게는 만화가 있었다. 만화 속에서는 현실의 나와 달리 근사한 몸을 가진 사람들을 원없이 그릴 수 있었고, 내가 감히 입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옷, 현실에 존재할까 싶은 옷까지도 그릴 수 있었다.

 

계영 님도 처음에 이 만화를 구상하실 때는 기존 작품들과 비슷한 풍으로 그리려고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화는 만화일뿐, 작가님의 진심이 담겨있고 생활이 담긴 만화를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하셨고, 그 결과 계영님 자신이 몇 년에 걸쳐 패션 테러리스트에서 패셔니스타로 거듭나는 리얼 스토리를 담게 되셨다고 한다. 


이번에 출간된 <드레스코드> 1권에는 총 10개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옷 쇼핑하는 방법부터 네크라인, 칼라, 사이즈 측정하는 방법 등 실질적인 정보가 담겨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패션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서 패션에 관한 유명한 책은 꽤 읽어봤다고 자부하는데, 이 책에는 내가 전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정보들만 쏙쏙 요약 정리된 느낌이 들어서 소장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키가 크고 통통한 편이라서 옷을 고를 때 어떻게 하면 더 슬림해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부드러운 인상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점을 신경쓰는 편인데, 이 책에 따르면 나 같은 체형은 실루엣을 X자로 만들고, 기왕이면 목을 시원하게 드러내고, 하의를 고를 때는 허리선이 높은 옷을 골라야 한다고 나와있다. 그림으로 봐도 어떤 스타일이 더 통통해보이고, 더 날씬해보이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신경쓰이는 항목이 바로 '커다란 뿔테안경 벗기'. 눈이 너무 건조해서 렌즈를 잘 못 끼는데 스타일을 위해서는 안경을 벗어야 하는 것일까. 안 그래도 요즘 제일 고민하고 있는 건데 책에 딱 나와서 심란~하다. 안경 써도 예쁘게 보이는 방법, 어디 없나?

 

<드레스 코드>에 패션에 관한 실질적인 정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옷이라는 것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입는 것만은 아니다. 옷은 내 몸의 확장이자, 내 자아를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어떤 옷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알고, 또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 정확히 아는 것은 그동안 소홀히 대했던 내 몸을 확실히 이해하는 과정이자, 나의 정체성 내지는 자아를 새롭게 발견하는 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작가님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도 단순히 패션에 대한 정보만이 아니라 바로 이런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책에서 보면 작가님 자신도 패션을 공부하고 매주 직접 쇼핑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안 좋은 추억을 마주하기도 하고, 앞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은지 계획하기도 했다. 또한 주변에 옷 때문에, 몸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있으면 귀중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해나가는 과정, 그것이 패션의 진정한 의미이자 우리가 패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참된 즐거움이 아닐까?

 

+

 

<드레스 코드>를 통해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유익한 정보도 얻을 수 있고, 패션에 관한 새로운 깨달음도 얻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아직 단행본으로는 1권 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앞으로 작가님이 어떤 과정을 거쳐 패션 테러리스트에서 패셔니스타로 거듭나시는지 계속 지켜보고 싶다. 물론 나도 지금은 그저 패션을 그저 보기만 좋아하고, 유행 따라가기에 급급한 초보 패션 피플이지만, 이 책과 함께 하면서 패셔니스타로 거듭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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