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에 담아 온 중국 - 거친 세상으로 나가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주는 특별한 선물
우샹후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영화가 대만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큰 히트를 쳤다. 대만의 톱스타 주걸륜, 계륜미가 주연인 이 영화는 음악학교를 배경으로 청춘 남녀의 풋풋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특히 대만의 '음악 천재' 주걸륜이 화려한 테크닉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노 배틀' 신은 인터넷상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대만 영화' 하면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도 그무렵 대만의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말도 모르면서 어렵게 자막을 구해 대만 드라마도 보고, 음악도 듣고, 간혹 쇼프로도 찾아봤다. 그러면서 느낀 건 내가 모르는 게 대만의 언어만이 아니라는 사실.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관련이 깊은 나라라서 아는 것이 많을 법도 한데 생각 외로 아는 것이 얼마 없었다. 그 중에는 인터넷상에 도는 폄하글에서 비롯된 오해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부터 직접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하고 책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쉽지가 않았고, 대만에 대한 책은 물론이거니와 대만 작가가 쓴 책은 더욱 찾기가 힘들었다.

 

+

 

그래서 <배낭에 담아 온 중국>의 저자 우샹후이가 대만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저자 우샹후이는 대만에서도 손꼽히는 지식인이자 작가, 저널리스트로, 일찍이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대만의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를 비판하는 <대입시험을 거부한 소년>이라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최근에는 아시아인의 관점에서 유럽 3국 -핀란드, 아일랜드, 노르웨이-을 여행하고 쓴 이른바 '국가 기행 3부작' 시리즈로 화제를 모았고, 이번에는 세 아들과 중국을 여행하는 '부자 기행 3부작'을 출간했다. '부자 기행 3부작' 중 첫 편이 바로 이 책 <배낭에 담아온 중국>인 셈이다. 워낙 외국 여행기를 좋아해서 저자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 찾아보았는데, 아쉽게도 <배낭에 담아온 중국>이 이 분이 쓴 책으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인 것 같다. 이 책이 화제가 되고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면 다른 책도 국내에 소개가 되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저자는 아들 셋을 모두 독립시키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아들과 중국을 종단하는 '졸업 여행'을 계획했다. <배낭에 담아온 중국>에 등장하는 아들은 그 중 첫째 아들로,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전공이 나랑 비슷해서 그런지 관심사나 말할 때 쓰는 용어, 현상을 보는 관점이 나랑 비슷했다. 그래서 저자의 가르침이 더욱 와닿았던 것 같다. 특히 앞부분에서 저자가 아들에게 던진 "중국도 모르면서 어떻게 제대로 된 세계관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니?" 라는 말은 내 마음을 죽비처럼 내리쳤다. 대학 때 중국에 관한 수업도 여러번 듣고 중국어도 배워보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 힘들어도 계속 중국에 대해 배우고 중국어를 공부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진작 공부할 걸! 게다가 책에 등장하는 도시 중에는 이미 내가 다녀온 곳도 몇 곳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멋모르고 친구를 따라갔던 중국 여행. 놀기 바빠서 몰랐는데, 그 때 내가 갔던 중국의 유적들이 이런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을 줄이야! 자책하는 나를 보며 동생은 '그렇게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 아니냐'고 했지만, '지금 아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책제목이 간절하게 다가왔다.

 

각 장은 저자인 아버지의 관찰과 감상,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의 글로 미루어 봤을 때 두 사람은 여행하면서 유쾌한 일보다는 불쾌한 일을 더 많이 겪은 것 같았다. 중국은 경제 수준은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낙후된 지역이 많고, 특히 서비스 수준이나 윤리, 준법의식 면에서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했다. 민족 의식이 높은 것에 반해 국민 내부의 감정 - 특히 다른 도시 사람들을 비하하는 경향이 높은 점은 외국인이 보기에도 볼썽사나웠고, 환경오염, 그 중에서도 물 부족으로 인한 고통은 이미 대도시에까지 만연해 있었다. 저자는 중국 내부의 문제가 외부로 폭발하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은 대만이라고 비관적으로 예측했지만, 우리나라도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에 대해 더욱 많이 공부해야 할 것 같다.

  

또한 여행길을 따라 이어지는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의 대화에는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차이가 여실히 묻어났다. 아버지는 2차 대전을 겪은 부모를 두었고, 민주화 이전에 오로지 경제 성장만 강요하고 인권은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반면 아들은 민주화 이후 물질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살았고, 무조건적인 성장보다는 환경, 인권 등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세대다. 유복하지만 여유가 없고, 똑똑하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이 얼마 없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하지만 전보다 경쟁이 더 치열해진 글로벌 시대에, 아버지 세대가 남긴 수많은 과오와 짐을 떠안을 아들 세대가 안쓰럽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저자의 아들은 외국에서 오랫동안 유학을 하고 명문대를 졸업한 인재인데도, 저자가 아들과 동세대인 상하이 '개미족'을 보며 아들을 떠올린 것처럼 나는 나와 내 또래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들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원하는 모습에 맞추어져 키워졌지만, 시대는 이제 아버지 세대가 살던 시대가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대견한 아들을 더 가엾게 보는 것 같기도 했다. 

 

++

 

나는 가족이 함께 썼거나, 부모가 자식을 위해 쓴 책이나 글은 '믿고 보는' 편이다. 가족이 함께 썼는데, 더군다나 부모가 자식을 위해 쓴 책인데 허술할 리가 없고, 거짓된 내용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싶었다. 중국의 역사와 정치, 경제를 아우르는 내용도 좋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특히 아버지가 아들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더욱 좋았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사업가를 꿈꾸는 둘째 아들과는 어떤 여행을 했는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부디 2권, 3권이 차례대로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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