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 - 디지털 세계를 벗어나 진짜 인생을 찾은 한 가족의 유쾌한 고백록
수잔 모샤트 지음, 안진환.박아람 옮김 / 민음인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때 '다마고치'라는 휴대용 게임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저 게임 속의 동물을 키우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한 내용이었다. 게다가 게임기는 지우개만한 크기에, 화면도 흑백의 모노톤이라서 지금 유행하는 총천연색의 게임들에 비하면 품질이 조악하기 그지 없었는데도 당시 아이들은 열광했다. 수업 시간에 다마고치를 하다가 선생님에게 혼나거나 빼앗기는 아이들도 많았고, 누가 더 오래 동물을 키우는지, 심지어는 누가 더 게임기를 많이 가지는지 경쟁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때 나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한테는 다마고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 '아, 나도 다마고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이들하고 같이 놀 수 있을텐데...' 라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집안 형편상 아주 어렸을 때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은 고사하고 생일 선물도 받아본 적 없는데, 아무 날도 아니고,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 다마고치를, 부모님이 사주실 리가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체념했고, 친구의 다마고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채웠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몇 개월이나 지났을까. 그새 아이들 사이의 유행이 바뀌어 아무도 다마고치를 가지고 놀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높은 학년의 언니들을 따라 공기놀이를 하거나, 고무줄을 하는 것이 유행을 했다. 몇 백원만 있으면 문방구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공기. 집에서 틈틈이 연습하면 금세 실력이 느는 공기. 나는 금방 공기 놀이를 잘 하게 되었고, 다시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알았다. 모든 유행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 유행한다고 다 따를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을 읽으면서 그 때 생각이 났다. 저자 수잔 모샤트는 세 자녀의 어머니다. 세 자녀는 모두 10대 청소년인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트위터, 페이스북 업데이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유튜브 영상 보고, 게임 하는 것이 낙이다. 밤낮없이 '로그인' 된 생활을 하느라 심신이 많이 지쳐있는 아이들을 보며 수잔은 결심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모든 전기제품으로부터 '로그아웃'하여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찾아주기로 말이다.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월든>과 전에 읽은 <노 임팩트 맨>이 떠올랐다. 실제로 저자는 <월든>에 깊은 영향을 받아 이런 모험을 감행한 것이라 밝혔고,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다. <노 임팩트 맨>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노 임팩트 맨>은 환경을 보호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반면, 이 책은 디지털 세계을 벗어나 진짜 인생을 찾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아무래도 저자가 뉴욕대에서 미디어 생태학을 전공한 언론인이고, 세 자녀의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 즉 '모성'이 발휘된 것이 두 책의 목적과 느낌의 다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세 아이는 이 6개월을 통해 아주 귀중한 경험을 했다. 처음엔 (당연히!) 어머니의 계획에 반대했다. 휴대폰이 없으면 사람들과 연락하기 불편할 뿐더러, 트위터, 페이스북을 못하면 친구들과 멀어질 것이고, 게임도 못하고 유튜브 동영상도 안 보면 화제에서 밀려나고, 최신 전자기기가 없다는 것은 곧 유행에서 뒤떨어진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막상 전자기기 없이 지내보니 걱정했던 것만큼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멀리했던 책과 가까워지고, 공부에 재미를 붙였고, 잊고 있던 뮤지션의 꿈, 저널리스트의 꿈도 살아났다. 온라인 상의 '트친', '페친' 대신 취미와 꿈을 공유할 수 있는 진짜 '친구'가 생겼고, 가족들과의 추억도 많이 쌓았다. 그리고 6개월이 끝나갈 즈음에 깨닫게 되었다. 트위터가, 페이스북이, 게임이, 아이폰이 유행한다고 다 따를 것이 아니라, (내가 초등학교 때 다마고치를 통해 알게 된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된다는 것을, 그게 인생에 있어서는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내용도 좋지만, 글도 재밌고, 한 가족이 복작복작 부딪치며 사는 얘기라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청소년 권장도서라고 하는데 어른들이 보기에도 좋다. 아니, 어른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디지털 중독, 게임 중독이라고 하는데 어른들도 못지 않다. (중년인 우리 아버지도 스마트폰 없이는 베란다에도 못 나가신다.) 디지털 기기 덕분에 생활이 훨씬 편해진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들은 수단이고, 기계에 불과하다. 그거 없이도 재미있게 놀고,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는 수단은 옛날에 도 있지 않았는가. 하루에도 몇 시간씩 모니터 스크린, 스마트폰 스크린 들여다볼 시간은 있지만 단 몇 분 내 가족, 내 친구, 심지어는 내 얼굴조차 들여볼 시간은 없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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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The Winter of Our Disconnect)
    from 취미로 책 읽기 2014-06-04 19:08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 - 수잔 모샤트 지음, 안진환.박아람 옮김/민음인매력적이고 탐나고 배아픈 책이다. 6개월 만에 서평을 쓰게 만들 만큼.출판사 책 소개에 나와있듯 이 책은 저자가 아이들에게 집을 '스크린 금지 구역'으로 선포한 6개월 간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그 실험도 독특하지만 그 과정을 담는 저자의 필체는 매우 사랑스럽다. 칙릿의 주인공처럼 발랄하고 (필자처럼) 괄호를 좋아하고, 이야기거리가 무궁무진하지만 너무 멀리 나가지 않는다....
 
 
우연아닌우현 2014-06-04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들도 아이들 못지 않은 중독이라는 점, 저도 격하게 공감합니다. 우리 가족, 내 친구 들여다 보는 시간이 줄어든 것 같아요. 글 걸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