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세상 - 개인의 삶과 사회를 바꿀 33가지 미래상
중앙일보 중앙SUNDAY 미래탐사팀 지음 / 청림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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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십 년 전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꿈 많은 여고생'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잔혹해서, 갑작스럽게 고입 제도가 평준화로 바뀌는 바람에 원하지 않던 - 무려 18지망으로 쓴- 학교에 배정이 되었고, 그 탓에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도 처음 몇 달은 전학을 갈까말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여름에는 2002 한일 월드컵 응원 다니느라 바빴고, 2학기부터는 영어 공부에 푹 빠졌다. 9.11 테러 이후 부시 정부가 벌인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으로 전에 없이 국제 뉴스가 많이 보도되었던 그 해에, 나는 넓은 세계를 무대로 하는 국제적인 일을 하는 직업을 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십 년 후 지금. 부시 정부가 그토록 강경히 주장했던 대량살상무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고, 부시 정부 또한 이미 오바마 정부로 바뀐지 오래, 벌써 4년의 임기가 거의 끝나가고 지금은 공화당 경선이 치러지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정부가 한 번 바뀌었고, 올해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십 년 전 '평준화의 희생양'에서 어찌어찌 '꿈 많은 여고생'이 되었던 나는 가진 것이라곤 대학 졸업장 하나 뿐인 88만원 세대, 3포 세대의 1人이 되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참 맞는 말이다. 십 년이면 국제정세도 바뀌고, 정부도, 국회도 몇 번은 바뀐다. 최신기술은 더 빨리 바뀌고, 십 년 전에 인기 있었던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도 은퇴한지 오래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 공부 잘해서 법대에 들어갔던 친구들은 사법고시 폐지, 변호사 정원 증가로 공부를 포기하고, 학교 간판보다 적성이나 새로운 전망을 따라 다시 대학에 들어가는 친구들도 몇 명 있다.

 

 

이런 시대에 과연 어떤 인생을 잘 산다, 부럽다, 멋지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전처럼 남보다 돈 잘 벌고, 명예가 높은 사람한테만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중앙일보 중앙 SUNDAY 미래탐사팀이 지은 <10년 후 세상>을 읽어보니 더욱 확신이 든다.

 

이 책에 따르면 십 년 후에 세상은 지난 십 년보다도 많이 변할 것이라고 한다. 가장 많이 변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역시 기술.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검토해주는 소프트웨어'가 등장하고(p.161), '언어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원하는 책을 단 60초 안에 내려받아 읽을 수 있'게 되고(p.168), '오프라 윈프리, 데이비드 레터맨 같은 대화의 달인들이 쉴 새 없이 던지는 곤란한 질문을 받아칠 수 있는' 로봇(p.247)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종교, 예술, 문화계 등 사회 전반의 풍조도 바뀔 것이다.

 

기술의 영향과 상관 없이 바뀌는 분야도 있다. 결혼, 출산의 기피로 싱글족이 늘고 '계약 깨면 남남되는 파트너혼'이 등장할 것이다.(p.91) 수명이 늘고 직업 트렌드가 바뀌면서 정년 100세, 평생 6번 이상 직업을 가져야 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p.134) 중산층의 붕괴와 양극화, 다문화가정 문제도 심각해질 것이다.

 

하지만 다가올 십 년 동안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니체와 들뢰즈의 후손인 우리는 오늘도 '욕망 기계'를 만드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인간이 환경을 다스리고자 하는 욕망에서 고안된 기술과 주술은 원래 그 뿌리가 같다. 오늘날의 기술정령 Techno Spirit들은 이전의 절대 신처럼 우리 위에 군림하지 않고, 아무 곳에나 편재하며, 접속만 하면 우리에게 봉사한다. 스티브 잡스로 대표되는 테크노 샤먼들의 활약으로 미래의 정령들은 우리의 삶에 더 깊이 파고들 것이다. (p.274)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아니 이십 년 전에도 최신기술은 있었다. 다섯인가 여섯살 때쯤, 무선 전화기가 처음 나와서 신기한 마음에 텔레비전을 하염없이 들여다봤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때는 삐삐를 가진 언니오빠가 제일 부러웠고, 중학교 때는 24음폰, 고등학교 때는 카메라폰을 가진 친구가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 그 때의 '최신기술'에 열광하는 사람은 없다. 

 

반면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고정되어 있는 것,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는 높아진다. 휴머니즘, 리얼리티, 생태, 환경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 바로 그 예다. 음악을 저장하는 매체, 재생하는 매체는 계속 바뀌지만 최고 명창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좋은 그림, 좋은 사진도 마찬가지. 좋은 글도 ㅡ 비록 책, 신문 같은 종이 매체가 사라지는 날이 올지라도 - 계속 존재할 것이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작가들의 열망과 그런 글을 읽고 싶은 독자들의 갈망은 쉽게 사라질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욕망'을 따르느라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모르고, 진정한 꿈을 찾지 못한 '얼치기'들이 많아질수록, 미련스러울만큼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걸으면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것을 만드는 사람들은 더욱 빛이 날 것이다.

 

그래서 '10년 후 세상'이 나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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