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테라피 - 개정판, 감각을 열고 자신을 믿어봐
윤수정 지음 / 흐름출판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스무살 무렵, 적성을 찾아보겠다고 이런 수업 저런 수업 기웃거리며 다니던 때가 있었다. 전공에 만족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 내가 모르는 나의 적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호기심에 학교에서 광고 수업을 하나 듣고, 남들 다 하는 것 같아서 신림동 모 건물에서 대학생 대상으로 개설된 마케팅 강좌를 일부러 신청해서 들었다.  

그 결과ㅡ 비록 발만 슬쩍 담가본 것이기는 하지만 둘 다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적성보다도, 광고와 마케팅이 소비자로 하여금 불필요한 소비를 하도록 자극하고 상품의 본질은 보여주지 않는 것 같았고, 이를 통해 현실을 왜곡하고 부정을 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결국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를 읽기 시작했을 때, 광고계에 오랫동안 종사한 카피라이터가 쓴 책이라는 것을 알고 이 책도 결국 광고, 마케팅이 나와는 맞지 않는, 또는 먼 세계 이야기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책이 되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저자 윤수정은 광고사와 영화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고, 현재는 우리나라 최초 영화 전문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면서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라는 책과 동명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화려한 광고인의 이력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학창시절 문예반이었고 대학에서도 국문학을 전공했을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해 카피라이터가 된 그녀는 화장품, 옷, 구두, 가방 등 자신과는 먼 상품들을 선전하는 카피를 쓰는 데 실패해 회사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을 때마다 자신을 위로해주는 것은 영화라는 것을 깨닫고 전직하여 '영화 전문 카피라이터'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었다. 애용하지도 않는 상품을 거짓으로 홍보하면서 화려하게 사느니, 길이 멀고 험할지라도 자신이 먼저 본 영화의 감동과 매력을 짧은 글로 전하는 일로 승부를 보겠다는 소신과 용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이런 소신과 용기를 가진 저자는 현재 일반인을 대상으로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라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광고의 핵심이 창의성, 즉 creativity 이니 저자가 크리에이티브 강의를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여느 광고, 마케팅 강의와 달리 전공생이나 그 분야 종사자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크리에이티브는 '온전한 자신의 마음만으로 세상의 산과 언덕을 넘도록 도와주는 자전거(p.295)'로서 삶에 힘을 주고 보탬이 된다. 그래서 강의와 이 책의 제목도 크리에이티브 '테라피'. 심리 치료에서 이 먼저 자신을 이해하고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크리에이티브도 먼저 나를 알고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것에서 비롯되고, 이것이 결국 스스로를 치유하고 세상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기 때문이다.   

저자가 카피 작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들여다볼 때마다 남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마음이 자랐고, 이 뛰어난 감성으로 <워낭소리> 를 비롯한 수백만 관객을 울린 작품의 카피를 썼다. 저자가 진행하는 강의에 참석한 학생들 중에도 크리에이티브 수업을 통해 자신에게는 도무지 없는 줄만 알았던 창의성을 발견하여 생활 태도가 달라진 사람도 있고, 자신만의 크리에이티브 타입을 찾아 개발하여 진로를 찾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크리에이티브가 치유의 힘이 있고, 광고계 종사자뿐 아니라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책이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던 광고인, 마케팅 종사자에 대한 편견을 깨주었고, 카피 하나에도 진실을 담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크리에이티브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비자가 아닌 일반인, 즉 사람들의 삶과 연결시키기 위해 힘쓰는 모습이 느껴져서 좋았다. 이런 책이라면 광고나 마케팅을 몰라도, 크리에이티브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가볍게, 편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감히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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