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쇼크 - 고령화, 쇼크인가 축복인가
테드 피시먼 지음, 안세민 옮김 / 반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빌 클린턴이 vegan diet 중이라고 한다. vegetarian diet 이 육류 섭취만 안 하는 것이라면 vegan diet는 생선, 우유, 치즈, 계란 등도 먹지 않는 '초강력' 채식주의라고. 채식주의자가 전보다 늘었는데 뭐 별난 일인가 싶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빅맥을 즐겨먹는 모습이 여러번 찍혔을만큼 패스트푸드와 육식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2004년 심장 수술을 받은 뒤 섭식 조절을 시작했고, 작년에 있었던 딸 첼시의 결혼식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슬림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옛날 같으면 먹을 것도 없는데 식단을 조절한다는 것이 가당치도 않은 소리로 들렸겠지만, 이제는 몸에 필요한 영양소만 집중적으로 섭취할 수도 있고 식습관을 바꿀 수도 있으며, 먹고 찐 살까지 의학의 도움으로 쉽게 뺄 수 있다. 빌 클린턴처럼 일찍부터 몸을, 건강을, 그리고 수명까지도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건강을 관리할 수 있고 수명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자연히 따라오는 문제는 고령화다. <회색 쇼크>는 국가를 넘어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이 고령화 문제에 관한 책이다. 도서관에서 보고 일본의 사례가 재밌기에 훌훌 읽다가 잘 알아두면 좋을 내용인 것 같아서 아예 통독했다.  

고령화. 사실 아직 젊은 나이라서 몸으로 느껴지는 정도는 아니지만, 당장 부모님 정년이 가까워오고, 집안의 최고 고령자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외증조모(즉 나의 어머니의 외할머니)인 것을 생각하면 먼 일도 아니다. 외증조모님 연세가 100세 가까우시다고 들었는데 나도 그 때까지 살게 될지 모른다. 

고령화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에서 보니까 전세계에 100세 이상의 인구가 현재 45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100세 이상 인구수는 1,800명 이상. 일본이나 유럽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고.) 무려 100세 이상의 인구만 45만명이니, 80세 이상, 60세 이상의 인구는 오죽 많을까. 

일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유명 대학을 중심으로 '장수학', '노인학' 같은 강좌가 개설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고령화는 또한 산업과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업은 고령화로 인해 노동자 평균연령과 분포가 바뀌니 생산성이 달라지고 경제가 개편된다는 것은 알 수 있겠는데, 문화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읽어봤더니 내가 요즘 궁금해하던 문제가 딱 나왔다. 바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범람! 

수전 보일의 에피소드는 용의주도하게 계획된 것일 수도 있다. 텔레비전 제작자들은 옛날부터 18~35세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돈을 어떻게 지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이 여전히 베이비부머와 그 부모에게 있는 고령화사회에서, 영국의 <브리튼스갓탤런트>, 미국의 <아메리칸아이돌>,<댄싱위드더스타즈> 같은 리얼리티쇼는 비록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나이 든 시청자들을 끌어당기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미국에서는 베이비부머가 일주일에 39시간 동안 텔레비전을 본다고 알려져 있다. 인터넷과 핸드폰에 더 많은 시간을 뺏기는, 대학교를 갓 졸업한 세대에 비해 12시간 더 많이 본다. (p.380)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라지만 내가 TV를 많이 안 봐서 실감이 안 났는데, 이제보니 우리 부모님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광팬이셨다. '청강이, 청강이' 하시기에 누군가 했더니 '위대한 탄생'인가 하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친구라고. 요즘은 슈퍼스타K 3를 열심히 보시고, 댄싱위드더스타도 보신다고. 나가수는 재방송까지 보신다. 남자의 자격에서 하는 청춘합창단도 굉장히 좋아하시던데,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일반인이 TV출연해서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맥락은 비슷하다. 

젊은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고, 우리 부모님처럼 나이 드신 분들까지 TV 앞에 붙들어매는 것을 보면 이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매력이 대단한가보다. 자식으로서는 밖에 나가서 친구분들도 만나고 취미 생활도 하셨으면 하는데, 막상 부모님 말씀을 들어보면 몸도 예전같지 않고 친구분들 만나기도 쉽지 않아서 TV로라도 대신하는 것이라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리 미디어가 '마사지'라고 해도 언제까지나 대리만족만 주어서는 한계가 있을텐데... 

비단 TV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여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개인으로서도 라이프 플랜 전체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노동과 여가에 대한 관점도 바꿔야 할 것 같다. 더 오래 살면 평생 먹고 살 걱정도 늘어나고, 뭐 하고 놀지, 누구와 살지에 관한 고민도 더 늘어나는 게 아닌가.  

참, 사는 게 걱정인데 오래 사는 걱정도 하는 시대가 왔구나.  

빌 클린턴처럼 나도 채식을 시작해볼까? 그 걱정도 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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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인분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한다니, 왠지 의외군요. 저희 어머니는 드라마 팬이시라.. 근데 다른 걸 할 수 없기에 TV를 더 시청한다는 건 슬픈 현실이에요. 저희 어머니도 아프시게 되면서 티비를 더 많이 보시거든요.

키치 2011-08-31 01:34   좋아요 0 | URL
저희 부모님은 tv 잘 안 보시는 편이었는데 점점 드라마에 빠지시더니 요즘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그렇게 좋아하세요. 자식으로서 걱정될 정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