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붕어빵>을 보는데 어머니가 그러셨다. 민서가 불쌍하다고. (참고로 민서는 붕어빵에 출연하는 박찬민 아나운서의 세 딸 중 둘째딸) 언니한테 눌리고 동생한테 치여서 얼마나 힘들겠냐고.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어머니는 아들 둘 딸 셋인 집의 둘째로 태어나, 그것도 어렸을 때 몇 년동안 어머니(나에게는 외할머니)와 떨어져 시골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셨다고 하니 민서 맘을 아시겠지.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만, 자기한테 보이는 것만 본다고 했던가. 나는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첫째딸 민진이가 안쓰럽다. 아들 없는 집의 장녀로 태어나 아들노릇 해야한다는 부담을 알게 모르게 받다보니 또래보다 어른스럽고 똑똑해진 그 애가 기특하면서도 안됐다. 아빠가 좋아하는 테니스도 열심히 하고, 반장을 할 만큼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고, 여동생 둘을 챙겨야 하는 그 아이의 마음을 나는 안다. 내가 그랬으니까. 

심리학 책을 읽다보면 자기 안의 아이와 만나야 한다는 문장을 많이 접한다. 그 문장을 접할 때마다 나는 내 안의 아이를 본다. 저게(내가) 아들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친척 어른들의 말을 듣는 나, 아빠 마음에 들려고 애쓰는 나, 일 나간 엄마 대신 동생을 돌보아야 하는 나, 부모님, 선생님 마음에 들려면 성적을 더 잘 받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공부하는 나, 어른스러운 척 하는 나, 강한 척 하는 나... 

며칠전 문득 나는 한번도 운동회나 소풍, 수학여행 같은 이벤트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은 내 기억속에서 단 한번도 즐거운 행사였던 적이 없다. 반장으로서 반 아이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든가, 선생님 도시락을 챙겨야 한다든가 하는 부담, 걱정 그런게 전부다. 가장 즐거워야 할 행사 때에도 그랬는데 보통 학교 생활 때는 오죽했을까. 괜찮은척 웃고있지만 속은 늘 우울했다. 한번도 행복했던 적 없다. 

다행히 대학 입학과 함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부모님, 선생님 모두 기대에 못 미치는 대학에 들어갔다고 재수를 권유했지만 나는 좋았다. 다른 학교들처럼 선후배 관계가 돈독해서 학풍이 권위적인 것도 아니고, 학교 행사가 너무 많아서 내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수업 듣고, 도서관에서 책 읽고, 관심있는 외부 활동 하며 '나의' 시간을 채우기만 하면 되었다.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성적을 잘 받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내가 여자라서, 장녀라서 어떻다는 소리도 들을 일이 없었다.   

그렇게 지낸지 약 6년. 이제 내 안의 아이가 조금씩 웃을 줄도 알게 되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난 늘 내가 불쌍하고 안됐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행복이라는 말도 입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아이를,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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