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얀 마텔 지음, 황보석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서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지만, 나는 여성이니까...흠흠...) 

 

<베아트리스와 버질>을 읽고 필 받아서 얀 마텔의 초기작인 <셀프>를 읽었다. 내친 김에 그의 작품을 다 읽어버릴까 싶었는데 <셀프>를 읽고 나니 어려워서 엄두가 안 나네... 

얀 마텔의 소설을 몇 권(이라고 해도 세 권이다. 파이 이야기, 베아트리스와 버질, 셀프) 읽어보니 책 제목이 내용에 대한 힌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파이 이야기>의 원제는 'Life of Pi'인데 말 그대로 파이를 통해 생의 강인함 내지는 잔인함에 대한 책이고,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라는 점에서 죽음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셀프>는 감을 잡기가 어려운 제목인데, 읽어보니 영어의 'himself', 'herself'에서 성별을 나타내는 him과 her를 지운, 무성(無性)(혹은 그냥 성)의 존재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인공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남성이었다가 성인 이후로는 여성으로 살게 된다. 란마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데, 남성과 여성 모두를 아울러 성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저자 나름의 설정인 것 같다.  

성인 이전의 남성으로 살았던 부분은 부모가 외교관이라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외국어를 배우고 낯선 친구들을 사귀는 모습은 저자 자신의 어린 시절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라서 그런지 묘사가 구체적이고 실감났다.  

성인 이후 여성으로 사는 부분은 앞부분보다 매력이 덜하지만 월경에 대한 묘사만큼은 기가 막히다. 남성이었을 때는 월경을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했던 주인공이 여성이 되어 직접 경험하게 되자 '고무줄로 불알을 꽁꽁 동여매놓은 것 같은 통증'이라며 기겁을 하는 장면은 최고였다. (고무줄로 불알을 동여매놓은 통증은 뭘까? 내가 매달 겪는 고통이 그런 고통이란 말이지...?)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내용이기는 했지만, 읽다보니 살면서 성의 신비를 반절 밖에 경험해보지 못한다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것이 성과 정체성, 인생의 연관성이라면, 여성으로서 나는 삶을 딱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 불완전함이 내 성적 정체성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갈구하도록 만들고, 반쪽을 찾게 만드는 것일테지만... 

<파이 이야기>, <베아트리스와 버질> 등 근래작들과는 분위기가 달라서 놀라웠지만, 얀 마텔 특유의 독창적인 문장과 섬세한 묘사가 살아있는 점은 그의 소설 다웠다. 이렇게 상상력이 풍부한데다가 문장까지 아름다운 작가를 발견하는 일은 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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