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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야기라는 배경지식이 없었더라면 사실 이 책이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작가인 주인공 헨리가 홀로코스트에 관한 소설을 쓰려다가 퇴짜맞는 부분 이후로는 홀로코스트에 관한 언급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데다가, 다짜고짜 등장하는 단편과 희곡, 이야기 전체의 접점도 알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저자는 유대인도 아니요, 독일인도 아닌, 홀로코스트와 상관이 없는 캐나다 출신의 작가인데 굳이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택한 이유는 뭘까.
하지만 끝까지 읽으면서 그것이야말로 저자가 말하고자 한 바가 아닐까 싶었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사람과 겪지 않은 사람의 경험의 간극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직접 경험한 사람의 기억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접 경험한 사람의 경험만이 소중한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인류 전체의 상흔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뚝뚝 끊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역사의 단편들은 모두 그 상흔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캐나다인이고 홀로코스트를 겪지 않았다고 해서 인류 전체가 가지고 있는 고통의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한국인이며 홀로코스트는 물론 6.25도 겪지 않은 나도.)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다른 나라 일이라도 고통을 겪은 이들의 증언에 공감하고 계속 주의를 환기시키는 일은 후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몫이며 이것 또한 소중하다. 전후 세대가 전쟁과 무관하다고 해서 책임을 방기하면 될까? 고국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제 3국들이 모두 등을 돌리면 될까? 모른다고 해서 알려는 노력을 덜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파이 이야기>에 비해 주제의식은 강한 반면 파격은 덜 한 작품이지만(그래서 실망했다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공부하고 있는 학문과 연관되는 부분도 있고, 앞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식으로 국내 문제뿐 아니라 국제 문제에 대해서도 발언하는 소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먼저 이런 시도를 한 이 소설이 인상적이었다.
그러고보니 얀 마텔은 아버지가 외교관이라서 고국인 캐나다를 떠나 스페인, 프랑스, 멕시코 등 여러 나라에 거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국가나 시대라는 굴레로부터 더 자유롭고, 전 세계, 인류 전체라는 시각으로 조망하는 것이 더 편하지 않나 싶다. 캐나다인으로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소설도 쓴 김에, 일제의 조선에 대한 만행에 대해서도 소설을 써주면 좋을 것 같은데(얀 마텔 정도면 전세계에서 관심을 가져줄텐데...)... 무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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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를 나는 엄청 쇼킹한 반전이 있는 비극적인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른 리뷰를 읽어보니 희망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평한 분들이 많으셔서 놀랐다. 신의 존재를 믿게 된다고? 내 기억엔 거의 공포 소설이었는데...내가 소설을 읽는 관점이 남들하고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