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이야기 -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애니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 김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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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환경 문제는 다원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환경 문제는 소비 문제다. 기왕이면 친환경 제품을 사는 것이 낫고, 아예 안 사는 것도 좋다. 소비 문제가 나왔으니 생산 문제도 된다. 기업은 친환경 제품을 생산해야 할뿐만 아니라 생산 공정도 친환경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소비와 생산 문제이니 분배 문제도 된다. 한정된 자원과 부를 어떻게 분배하는가 하는 경제 문제이며, 이는 곧 정치 문제이기도 하다. 자원을 가진 집단과 자본을 가진 집단 간의 대결이며, 이는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중요한 문제다. 이제까지 환경 하면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고, 되도록 쓰레기를 줄이고 전기 사용을 줄이는 정도의 문제로 생각했는데(물론 이것도 매우 중요한 습관이다!),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호텔의 작은 카페에 앉아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기업인과 원조단체 활동가의 대화를 들으면서 카페오레를 마셨다. 그때 나는 저 수영장 가득 물이 반짝이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 커피 한 잔이 나오려면 약 14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나처럼 몰골이 꾀죄죄한 사람이 근사한 호텔 화장실을 20분이나 쓰도록 허용한 이유는 내 피부색(백인)과 주머니 속의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카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깨끗한 물이 없어서 1년 안에 죽을지도 모르는 수십만명의 어린이가 이런 카드를 한 장씩 갖고 있다면, 아니 집 근처에 안전한 수돗물이라도 나온다면, 이 아이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p.49)

얼마전에 읽은 <노 임팩트 맨>, <굿바이 쇼핑>에 이어 애니 레너드의 <물건 이야기>를 읽었다. (내 마음대로 이 책들을 '친환경 3부작'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작가도 다르고, 출판사도 다르고, 주제가 비슷한 것 빼고는 연관성은 없다.) <노 임팩트 맨>은 1년 동안 아무 것도 '소비'하지 않고 살아보려고 노력한 남성의 체험기이고, <굿바이 쇼핑>은 역시 1년 동안 아무 것도 '구입'하지 않고 살아보려고 노력한 여성의 기록이다. (<굿바이 쇼핑>의 저자는 물건 구매만 줄인 것이고, <노 임팩트 맨>의 저자는 물건 구매뿐 아니라 전기, 수도 등 소비 자체를 줄였다. <노 임팩트 맨>이 좀 더 '독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의 두 권이 체험기, 저널 같은 성격인 반면 <물건 이야기>는 보다 전문적이고 의식적이다. 그래서 읽는 데 좀 고전 했다. 앞의 두 권을 읽고 정리하는 차원에서 이 책을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 더 새롭고 근사한 물건을 더 많이 사야 한다는 압력은 정체성과 지위를 표현해야 한다는 압력과 관련이 있다. <미래를 위한 경제학, 자본주의를 넘어선 상상>에서 구스타브 스페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튀는 것'과 '묻어가는 것' 둘 다를 통해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소비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킨다. 자본주의와 상업주의 문화는, 물건을 소유하고 그것을 과시하는 것을 통해 '튀는 것'과 '묻어가는 것' 둘 다를 강조한다." (p.294)

다양한 이슈가 소개되지만 핵심적인 주제는 '소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소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친환경적인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스스로를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1+1, 파격 세일 같은 문구에 마음이 약해지고 결국 지갑을 열고 말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산 제품은 제대로 쓰지 못하고 버리거나 남에게 줘버리는 경우가 많다. 당장은 싸게 사서 얼씨구나 좋다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원을 낭비한 셈이 되고 지구 전체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게 된다. 

게다가 그렇게 저렴한 가격에 나오는 제품은 그 제품보다 싼값에 착취되고 있는 후진국 노동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그 노동자들은 대개 사회적 약자인 여성, 아동인 경우가 태반이다. 남북 격차를 개선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도 '이게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는 생각에 저지른 소비 한 번으로 본의 아니게 그들을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트는 2008년 투어쇼에서 "기본적으로 집이란 쓰레기 제조 센터"라고 말했다. 집에 오자마자 물건은 쓰레기로 변신하기 시작한다. 집에 들여온 물건은 처음에는 잘 보이게 전시된다. 그런 다음 찬장이나 선반에 들어갔다가 다시 벽장으로 옮겨진다. 그 다음에는 차고의 상자에 처박힌다. 그리고 쓰레기가 될 때까지 거기 처박혀 있는다. (p.321)  

그렇다고 저자의 주장이 소비를 전혀 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저자는 프로포즈를 하는 남자친구에게 비싼 신품 반지 대신 중고 반지를 달라고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을 본 사람이라면 다이아몬드 산업 이면의 추악한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생산되는 새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낡은 중고 반지를 구입하면 굳이 나를 위해 새로 광물을 더 캘 필요가 없다. 게다가 몇십년, 몇백년 전 그 반지를 두고 사랑을 맹세했던 이름 모를 연인들을 상상하면 반지의 의미가 더욱 로맨틱하게 느껴질 것이다. 나도 나중에 연인한테 꼭 새 반지 대신 중고 반지를 달라고 해야지.    

<물건 이야기>는 영화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못 찾았다. 대신 인터넷에서 영상을 찾아보니 여러 개가 나왔다. 이런 영상들은 인터넷상에서뿐 아니라 학교에서 수업 부교재로 활용되며 많은 이들에게 무분별한 소비의 위험성과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고 한다.  http://youtu.be/9GorqroigqM 

영상을 보다 보니 <물건 이야기>는 단순히 환경을 살리자는 정도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의 대상에 불과한 물건의 이력과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고, 내 몸 가까이에 두고 쓰는 물건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에 반해 사자마자 서랍장, 옷장, 찬장에 처박히고 결국 쓰레기로 운명을 다하는 물건은 또 얼마나 많은가. 불필요한 소비는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사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물건을 소비하고 구매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 1人으로서 반성, 또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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