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오리새끼, 날다 - 신경정신과 전문의 양창순의 인간관계 멘토링
양창순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대학교 신입생 시절, 학교 행사를 통해 4학년 선배 한 명을 알게 되었다. 1학년 꼬꼬마 눈에 졸업을 앞둔 4학년 선배는 어찌나 근사하고 대단하게 보이던지... (졸업하고 보니 1학년이나 4학년이나 거기서 거긴 것 같지만...) 그 선배에게 만약 신입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런데 선배는 영어공부도, 취업준비도 아닌,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심리학 공부라니... 당시만 해도 심리학이 뭘 하는 학문인지도 모르고, 심리를 알아서 뭣에 써먹는가 싶었던 내 귀에는 선배의 대답이 생경하게만 들렸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한살 한살 나이를 먹으며 인간관계에 치이고 사회의 벽을 실감하고 보니 공부 중 제일은 나를 알고 남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런 학문이 바로 심리학이라는 것을 말이다.   

한동안 선배의 말을 잊고 살다가(선배님, 죄송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정기적으로 읽고 있다. 이번에 읽은 <미운오리새끼, 날다>는 신경정신과 전문의 양창순이 월간 <좋은생각>에 연재한 <양창순의 작은 속삭임>이라는 칼럼을 묶은 책이다. 책에 소개된 사연들은 특정 세대나 집단에 집중되지 않고 다양하며,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때늦은 진로 고민을 하고 있는 직장인, 가족 간의 불화를 견디기 힘든 주부, 만나는 남자마다 쉽게 질려서 헤어지는 여성,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남성 등 주변에서 볼 법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어려운 심리학 용어도 안 나오니 편안하게, 남이 카운셀링 받는 것을 관찰하는 기분으로 읽을만 하다.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데다 직장 생활과 병행해야 하는 탓에 스트레스가 크다고 하셨는데, 저항은 사실 긴 인생에 비하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니면 '그래, 힘들게 고생할 것 없지, 뭐' 하며 하고 싶은 일을 접은 채 그만 나이가 들어 버린 자신을 상상해 보세요. 그러면 지금 어떤 선택이 현명할지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p.33)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결국 인생 전체가 실패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시도한 끝에 실패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것은 다시 시작하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우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 갈 수 있습니다. (p.239)

진로에 대한 고민은 이제 청소년, 청년들만의 것이 아니다. 평생직장, 은퇴, 정년 퇴직 등의 개념은 옅어지는데 수명은 늘어나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자기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나이를 먹어서도 진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으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직장인에게 저자는 돈, 남들의 시선, 가족의 부담 생각은 잠시 접고, 자신의 인생을 두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생각해보라고 조언한다. 만약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답이 나온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달려들라고 한다. 흔한 조언이지만, 흔한만큼 이 이상의 조언도 없는 것 같다. 공부든 일이든 원하는 것이 있는데도 두려워하며 회피하는 것은 자존감의 부족, 또는 실패로 인한 트라우마 등등에서 비롯된 것인 경우가 많다. 자기가 원하는 일 하나 못 하는 사람이 과연 누구를 돕고,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    

 

내성적인 사람일수록 '내가 붙임성도 있고 사람들과 거침없이 잘 어울리고 말도 잘하고 씩씩하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공상합니다. 그리고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스스로에게 절망하며 불안해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나의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성격이 상대방에게 호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며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믿고 마음의 문을 연다면 대인관계도 그만큼 좋아질 것입니다. (p.75)

내성적인 사람에 대한 조언도 나온다. 내성적인 사람으로서 눈이 번쩍 뜨이는 부분이었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저자는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성격이 상대방에게 호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정말 그렇다. 예전에 EBS에서 방영한 성격 관련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모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외향적인 아이보다 내성적인 아이가 친구로서 더 인기가 많다는 결과가 나왔었다. 나만 해도 너무 밝고 적극적이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친해지기는 쉬워도 오랫동안 마음을 터놓고 사귀는 친구가 되기는 어렵다. 이처럼 내향적인 성격은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학교 다닐 때 스스로는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속상해 했는데 의외로 시험 점수가 잘 나올 때가 있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말을 잘했는데도 스스로 못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비판자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세요.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p.189) 

'이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비판자는 나 자신'이라니... 찔린다. 사실 사람들은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다. 그걸 받아들이면 사는 게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내가 그걸 알게 된 계기는 '옷'이다. 아주 옷을 잘 입었거나 못 입었을 때를 제외하면, 사람들은 내가 무슨 옷을 입는지 잘 모른다. 입장을 바꿔서 나도 남이 무슨 옷을 입는지 잘 모르지 않나. (나는 그렇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옷장에 옷이 한 가득 들어있는데도 옷이 없다며 툴툴 댄다. 어제 입었던 옷을 오늘 다시 입고, 내일 또 입는다 해도 그걸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나한테 관심이 있는 사람이니 잘 해줘야 한다 ^^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은 접고, 나는 나를 어떻게 보는지, 진짜 '나'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뭘 원하는지, 뭘 하면 즐겁고 행복한지,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지... 

   

간혹 극단적인 사례도 있지만, 대개 일상 생활에는 문제가 없고 남들이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데 내적으로, 또는 가정에서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아서 놀라웠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아니면 친구나 지인들의 괜찮아 보이는 표정 뒤에는 저마다의 고민이나 갈등이 있겠지. 평생 공부하고 알려고 노력해도 전부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 한 사람, 내 가족, 친구의 고민을 이해할 수만 있어도 인간관계로 인한 고민은 덜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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