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꿈꾸는 다락방>,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등 자기계발서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 이지성이 쓴 책이다. 이전까지 이 작가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즐겨 읽을 정도인데, 웬일인지 주변에서 안 좋은 평을 많이 들었고, 서점에서 들춰봐도 내용이 영 눈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나만 유독 편견을 가지고 있는건가 싶었지만, 인터넷상의 리뷰만 보아도 '굉장히 좋았다'는 찬사부터 '돈이 아깝다'는 비난까지 호오가 매우 심하게 갈리는 것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이 책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전작처럼 무작정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주문을 하는 내용이 아니라, 인문고전을 읽음으로써 자기 성장을 도모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읽어도 크게 손해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골라보았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소감은... 아, 사실은 아직도 혼란스럽다. 이 책은 좋은 책일까, 안 좋은 책일까?

 

 

 

미국 명문 사립 중고교의 인문고전 독서 열기는 놀라울 정도다. 1) 플라톤의 <국가>를 읽고 소화한다. 2) 도서관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주제로 집필된 모든 책을 찾아 읽는다.  3) 플라톤의 <국가>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고 토론한다. 이런 식으로 인문고전을 한 권씩 철저하게 떼는 일이 미국의 명문 중고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중고교는 어떠한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p.29)

 

일제는 프러시아 즉 독일에서 시작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학교제도를 그대로 수입해서 당시 식민통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에 이식했다. 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은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기반으로 한 자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했다. 쉽게 말해서 당신이 받은 학교 교육과 지금 우리나라 십대들이 받고 있는 학교 교육은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생산하는게 목적이었던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 (p.65)

 

 

도입부에서 저자는 세계 상위 0.1%의 교육과 한국의 교육제도를 비교한다. 알다시피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제도가 실시된 것은 전세계적으로도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그렇다면 이전까지 상위층은 어떻게 자녀들을 교육해왔을까? 바로 인문고전을 읽혔다. 서양에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온 철학자들의 사상을 공부시켰고, 동양에서는 공자, 맹자 등 중국의 고전을 읽히는 것으로 교육을 했다. 우리 선조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19세기 독일 교육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그 결과 한국의 교육은 인문고전을 탐독하며 사상을 심화시켜온 전통을 잃고, 실용적인 기술만을 배운 하급 인력을 양성하는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교육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저자의 주장이 사실인지 음모론에 불과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장한나가 하버드 철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그렇고, 알렉산더 대왕, 조지 소로스, 세종대왕, 정약용, 이이, 이병철, 정주영 등 인문고전 독서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비결 중 하나인 것은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인문고전 독서가 어떻게 개인과 가문, 나라의 운명을 바꾸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주고, 후반에서는 초보자들이 인문고전 독서를 시작하는 방법과 자녀들을 위한 독서교육 방법, 추천도서 등도 안내해준다. 이렇게 이 책은 인문고전을 읽어보고 싶기는 하지만 선뜻 엄두가 안 나는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준다는 점에서는 괜찮다. 나도 이 책을 읽고나서 아직 못 읽은 고전 몇 권을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추가했다. 대개 몇 권으로 나눠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비싸지만, 두고두고 읽을 것이고, 저자의 말대로 밖에서 커피나 간식 사먹는 돈에 비하면 싼 것 같다.

 

 

서점에는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피터 린치, 짐 로저스 등등 자본주의 세계의 최고 승자들의 투자 비법을 담은 책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들의 책을 죽어라고 읽고 그들의 비법을 열심히 따라 한 사람 중에 놀라운 이익을 실현한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치열한 인문고전 독서로 두뇌의 수준을 한차원 높인 뒤에 터득한 투자의 비결을 담은 그들의 글을, 인문 고전을 전혀 읽지 않은 두뇌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투자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pp.112-3)

 

 

하지만 별 다섯개를 주고 싶을만큼 마음에 쏙드는 책은 아니다. 먼저 이 책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 제 3장 '자본주의 시스템의 승자가 되는 법'인데, 제목 그대로 인문고전을 읽는 목적은 단순히 자본주의 시스템의 승자, 세계 상위 0.1%가 되기 위한 것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까지 인문고전을 탐독해온 이들은 인간의 본성,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방법, 우주의 원리 등 보다 높은 차원의 문제들을 탐구했고, 자본주의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하나의 발명품에 불과하다. 고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성공하기 위해 고전을 읽는 수준에 그친다면, 그것은 재테크 서적이나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인문고전 독서가 세계 상위 0.1%들의 성공의 비결 중 하나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자식에게 인문고전을 읽히기 위해서는 부모의 경제력과 학력, 교육열도 따라야 할 것이고, 저자의 주장대로 단순히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그만한 수준의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훗날 인문고전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할만한 기회(학업, 관직, 직업 등)가 제공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상위층이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 성공과 부를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고, 부모가 교육적인 소양이 있고, 폐쇄적인 환경 덕분에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서 지식을 공유할 수 있고, 학벌이나 관직, 직업이 세습되기 때문에 실용기술을 요하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러한 언급이 없다. 

 

 

 

이계안은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에서 한 여성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인문학과, 고고학과, 문화인류학과 등 소위 인문계열을 최고의 학과로 인정한다. 영국의 이튼스쿨을 나온 명문가 자제들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의 고고학과로 진학한다. 런던의 금융시장에서 일을 하는 최고의 수재들은 경제학과나 경영학과 출신이 아니다. 오히려 인문학이나 고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p.156)

 

 

장점도, 단점도 많은 책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썼는데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 책이 좋은 책인지 아닌지... 자본주의의 탈을 쓰고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끝없이 소외당하고 있던 인문고전의 가치를 새로 발견한 시도는 좋다. 이 책을 읽고 '고전을 읽어봐야지'라고 새롭게 마음먹거나, '아, 나만 어렵게 느낀게 아니었구나'라고 위안을 얻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모두가 자본주의의 극단으로 달려가는 세상에서 '인문고전을 읽자'고 주장한다는 것은 용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고전을 읽는 목적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종속되기 위한 것으로 귀결된 점은 역시 아쉽다. 소크라테스가 그러했고, 아담 스미스, 케인즈가 그러했고, 정약용, 이이가 그러했듯이 고전을 읽는 이유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성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부조리를 시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다. 그래서 진정한 사상가들은 괴로웠다. 사적으로도 고달팠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의 부나 명예를 얻기 위해 독서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계속 고전을 탐독하고 연구했다. 저자의 주장대로 상위층이 되기 위해서, 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고전을 읽는다? 그건 앞뒤도 안맞고, 너무 타협적이다. 그래서 비타협적인 인문고전 독서가들이 이 책에 혐오감을 느꼈던 것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찬샘 2011-08-02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님의 리뷰를 읽었습니다. 호오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말씀!40자평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정말이지 이 책이 좋은 책일지 나쁜 책일지 저도 무척 궁금하네요. 어떤 분의 말씀처럼 이 책을 읽을 시간에 다른 인문학서를 한 권 더 읽는 것이 나을지... 님의 글을 읽으니 이 책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으로 여겨집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 책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키치 2011-08-03 16:41   좋아요 0 | URL
저는 안 좋은 평을 더 많이 보았는데 읽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고전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고, 어떤 책이든 일단 읽어보고 평가하는 것이 독자의 소임이겠지요...^^ 덧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