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읽기는 지난주에 읽었는데, 리뷰를 어떻게 써야될지 좀처럼 떠오르지를 않아서 오늘까지 미뤘다. (솔직히 이 책을 남들한테 권할만큼 내가 떳떳하게 제대로 살고 있다는 확신이 안들어서 감히 이 책 얘기를 꺼내기가 망설여졌다.) 그래도 열심히 읽었는데 뭔가 흔적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리뷰는 못되고 그냥 푸념이라도 좀 풀어놓아볼까 한다. 

 

사서 고생하는 타입이기도 하지만, 대학다니는 동안 적성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정부, 기업, NGO 등 여러 분야에서 기회가 닿는 대로 일해봤다. 여기저기 다 돌고 결국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해 지금은 요모양요꼴인 백수가 되었지만, 모 기업에서 서포터즈 비스무리하게 활동할 때 힘들었던 기억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일 자체는 힘들지 않았고 페이도 좋았는데(그 때 받은 상품 하나는 아직까지도 잘 쓰고 있다. 그건 정말 쌩유!), 기업 특유의 조직적인 분위기가 숨막혔고, 무엇보다도 나도 애용하지도 않는 물건을 남한테 판다는 게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꾹꾹 참고 수업까지 빼먹으면서 활동은 했는데,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고, 거짓말처럼 막판에 병이 나서 결국 집에 며칠이나 누워있었다. 그 때 결심한 게 돈 좀 못 벌고 남들 눈에 안 차도 내 성에 안 차는 일은 하지 말자, 한 번 사는 삶, 나를 속여가면서까지 비굴하게 살지는 말자는 것이다. (뭐 결국 백수가 되었으니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들릴까 두렵다마는...) 


 
그 때 얘기를 친구나 주변사람들한테 해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얼마 없어서(뭔 배부른 소리냐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 후 그 친구들 대부분이 내로라하는 기업에 들어갔다.) 잊고 있었는데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를 읽으면서 다시금 그 때 생각이 났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주는 책이라서 내 또래의 사람들한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데, 막상 내 주변에는 이 책을 읽고 이해할 사람이 없다. 아니 이제는 책 자체를 읽는 사람도 얼마 없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이 땅의 청춘들이 '열정'이라는 구호에 세뇌되어 자본가와 기득권층의 인적'자원'으로서 값싸게 희생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라고 말한다. 사실 '열정'이라는 말을 좋아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동안 무언가로부터 세뇌되어 이 말을 좋아했던 것은 아닌가 싶어 섬뜩했다. 그러고보면 어릴 때부터 참 많이 들었다. 잘 할 수 없으면 열심히라도 하라는 말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수행평가 때 '열심히 하면 A는 못 줘도 B는 주겠다'는 말을 했던 기억도 나고, 시험점수가 몇 점 이상이 안 되면 '이건 머리가 아니라 노력의 문제'라고 협박 비슷하게 했던 기억도 난다. 뭐든 열심히, 성실하게 하라, 노력하라... 은연중에 잘 하는 것은 둘째치고 열심히, 열정을 다해 살라는 말이 머리에 코딩되었던 것 같다.  

 

   
 

열정은 본래 대중의 것이었다. 오타쿠와 마니아들은 자발적으로 모였고, 자발적으로 배웠으며, 자발적으로 창작했다.'문화 산업'과 '벤처 기업'의 등장은 상황을 바꿔 놓았다.취미가 일로, 일이 취미로 변했다. 열정이 산업의 내부로, 그리고 노동으로 유입됐다.자본주의는 '열정'의 영역에서 새로운 시장과 노동력을 발견했다.'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말은 이전보다 더한 성실함과 근면함을 요구했다.열악한 조건도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혹여 불만이라도 토로하는 사람은, 이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이 대하여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열정 노동의 본질은 다음 세 가지 진술이다. 
(1)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이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
(2) 그러므로 나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다.
(3) 고로 나에겐 노동자의 권리가 필요 없다. (p.186) 

 
   

 

이 책에 등장하는 청춘들도 똑같다.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어른들이 시키고 고용주가 명령하는대로, 하고 싶은 것, 하라는 것 열심히 성실하게 하고, 노력하면서 산다. 그런데 하나도 행복하지가 않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그저 직업인으로 인정받고 세 끼 밥 먹고 옷 입고 문화생활 즐기면서 사는, 아주 소박한 행복인데 그걸 손에 움켜쥐기가 쉽지 않다. 어느 게이머는 합동 연습 빠지고 비욘세 콘서트에 갔다는 이유로 제명이 되었고, 심지어는 故최고은 작가가 빈곤 속에서 병을 앓다가 목숨을 잃었다. 한숨이 푹푹 나온다. 하지만 마냥 절망할 수는 없다. 아쉽게도 이 책에는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는 나와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바꿀 수 있는지 대안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겠다. 이제는 열정, 그리고 열심히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열정이라는 것 자체는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이 말이 좋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 대체 뭐가 나쁜가. 다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과연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위에서' 또는 '주변에서' 시키는 말에 끌려서 하는 것인지는 분명하게 가릴 필요는 있다. 아마 저자들도 그런 생각없는 청춘들, 그리고 그런 청춘들을 양성하는 사회를 비판한 것이지, 열정 자체를 나쁘게 말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저자들도 학문과 이 사회에 열정이 있는 분들일테니)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열정, 하고 싶은 일에 뜻을 펼치려는 열정, 이 대안들 뒤로는 이 시대의 가장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삶, 공무원이나 대기업 정규직이 되기 위한 열정이 있을 것이다. 사실은 뒤로 갈수록 기댓값이 더 높기 때문에, 우리는 체제에 순응한다. 그 결과 우리들 대부분이 어떤 영역에서든 불안정 노동자로 남는다.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르지만, 개인이 이 사태를 해결하려 들었다간 혼자서 손해를 보게 될 거라는 예감이 있다.그리고 슬프게도 그 예감은 진실에 가깝다. (p.235)  
   

 

덩치에 안 어울리게 민감한 성격을 가진 나는 다행히 아주 짧은 경험을 통해서 내가 어떤 노동의 형태와 맞지 않는지 알았지만, 이런 시스템 하에서도 꾹 참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고, 아마 나도 조만간 취업이 되어 노동자의 신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열심히 일하는 것과, 내가 지금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하는 건지 알고 일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적어도 어딘가 개선의 여지는 있을테니. 그러나 현실은 아직 멀었다. TV에 나오는 남의 노래대결에는 열불을 내도 자기가 처한 차디찬 현실에는 미지근해지지도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니. 그렇지만 나라고 뭐 잘났나. 열정을 가장하며 기득권층에 편입되기 위해 기를 쓰고, 뭐가 됐든 닥치는대로 노동하려고 발악하려는 사람이 바로 난데.   

  

어쩌면 이 책을 읽고 이렇게까지 푸념을 늘어놓은 건 나를 '잉여'로 만든 사회에 대한 개탄이 아니라 그토록 싫어했던 미지근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분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제까지 내가 이 책의 리뷰를 쓰지 못해 빌빌 댔던 건 열정이 어떻게 노동이 되는지, 머리로는 이해하고 가슴으로는 절감하는데 몸으로는 영 따르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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