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리셋 - 동경대 출신의 신세대 스님이 들려주는 번뇌 청소법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이혜연 옮김 /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비가 온다. 몸도 찌뿌두둥하고 마음도 축 가라앉은 것이 공부할 기분이 전혀 나지 않는다. 이 참에 밀린 리뷰나 쓰면서 시간을 떼워야겠다. 오늘은, 오늘만은 괜찮겠지. 요즘 나의 화두는 환경, 소비(브라보! 노 임팩트 맨), 그리고 명상인데, 먼저 명상에 관해 읽은 책 한 권에 대해 써보겠다.

 


올해 초에 MBC에서 방영된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처음으로 코이케 류노스케라는 스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도쿄대 출신이다. 그 간판으로 마음만 먹으면 어떤 직장에든 들어가 승승장구하며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다. 그도 그렇게 믿었다. (결혼도 했던 걸 보니 직장도 다녔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망나니가 되어 있었다. 말로만 듣던 'DV'의 가해자였던 것이다. 무엇이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에 그는 그길로 아내와 헤어지고 출가를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도시로 돌아왔고 지금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명상의 힘을 전파하고 있다.

 

장래가 보장된 도쿄대 졸업생에서 고된 수행을 하는 불자로의 변신. 이만큼 극적인 인생의 변화가 또 있을까. 방송을 보고 하도 신기해서 일부러 그의 웹사이트 '가출공간(http://iede.cc/)'에도 방문해보고 그에 관한 글을 찾아 읽었다. (+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명상과 수련을 지향하는 그는 '신세대 스님' 답게 웹사이트를 만들어 명상 철학이 담긴 그림일기를 올리고 일반인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불교식 요리법 등을 알려주고 있다.) 그래도 웬일인지 그의 책을 읽을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얼마전 도서관에서 <번뇌 리셋>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바로 읽었다. 군데군데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지만(솔직히 거슬릴 정도였다)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기에는 괜찮았다. (많이 참았다.)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번뇌, 즉 화, 짜증, 우울, 스트레스 등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살면서 안 좋은 일 한번 안 겪는 사람 없고,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안 좋은 감정을 완전히 극복하며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자신의 삶을 좀먹는다면 조치가 필요하다. (문제는 진짜 조치가 필요한 사람들은 이런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이지.)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내가 이 책을 읽고 이해한 바로는 이렇다. 내가 나라고 느끼는 존재는 온갖 감정이 모인 감정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은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통해 더욱 강해지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화가 났을 때는 화가 났다는 걸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서 멈춰야 한다. 화를 참거나 애써 괜찮은 척 하는 것 또한 '화를 참는 자기', '착한 자기' 등 거짓된 '자기 이미지'를 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산다는 건 자식, 부모, 학생, 친구, 연인, 사회인 등 수많은 가면을 쓰고 벗는 과정의 반복이다. 더 많은 가면, 더 비싸고 좋은 가면을 쓰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인생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눈 가리기'일뿐이고 그 가면에 만족해서는 진정한 자신을 잃을 수도 있다.


  

   
  자기 이미지는 상처입기 쉽고 불안정하고 취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 즉 자기라는 것은 사실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니까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서 많은 환영을 계속 모으는 고생, 수고는 일종의 함정입니다. 자기 이미지는 상처입고 깨지기 쉬운 것입니다. 쉴 새 없이 깨지는 것을 부실하고 이상한 실로 꿰맨다든가, 접착제로 보강한다든가 영양을 계속 보충해 주어야만 합니다.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자기', '유머와 센스가 있는 자기', '자원봉사 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자기', '기독교도인 자기', '불교도인 자기', '사랑받고 있는 자기',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일에 익숙한 자기', '당신을 이렇게도 사랑하고 있는 자기'... 실이나 접착제로 봉합한 가지가지의 아이템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 발가벗겨진 우리의 속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그렇게 눈 가리기를 계속하는 것으로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pp.108-9)
 
   

  
 

정말 그럴까? 이 부분은 마침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내 인생이다>라는 책인데, 이 책에는 멀쩡한 직업 가지고 잘 살다가 인생 중반에 삶에 회의를 느끼고 극적으로 전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러고보니 전환, 리셋... 비슷하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말에 따르면 새로운 인생을 찾은 느낌이 마치 안 맞는 옷을 벗은 것처럼 시원하고 자연스러운 기분이라고 한다. <번뇌 리셋>의 저자의 말대로 직장이나 사회에서 쓰고 있었던 거짓된 '자기 이미지'를 모두 버리고 긴 고민 끝에 자기한테 가장 맞는 삶을 선택했으니 당연히 그렇겠지.

 

그러고보면 명상이든 일이든 인생이든 모두 하나의 원칙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되기(Be yourself), 그리고 선택과 집중, 나에게 올인. 그걸 몰라서 이제까지 빌빌대고 살았나보다. 아니, 알면서도 일부러 피해다녔던 걸까. 아무튼 끈적끈적한 날씨 때문에 치밀어오르는 화와 짜증은 그만 '인정'하고 이제는 오늘 일과로 다시 복귀해야겠다. (하루 리셋?) 아, 그리고 코이케 류노스케의 책은 '다른 번역자의 책으로' 더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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