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가쿠타 미쓰요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일본소설. 고등학교 때 참 열심히도 읽었다.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 무라카미 하루키... 특히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같은 여성 작가들이 쓴 소설을 좋아했다. 연애나 결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일상을 배경으로 담담하게 쓴, 지극히 '일본 소설'스러운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대학 이후로는 그리 즐겨 읽지 않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고등학교 당시에는 대학 입시와 수험 공부로 인해 생활이 팍팍해서 일본 소설의 말랑말랑한 느낌이 멋지고 신선하고 여유롭게 느껴져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일본소설 한 권을 읽었다. 제목은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책에 관한 특별한 에피소드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조르르 등장하는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하나하나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가슴 뭉클해지는 이야기들이라서 책장을 덮자마자 동생을 불러 얼른 읽으라고 강요(!)했다. 읽다보니 나만의 책에 얽힌 추억들도 줄줄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책을 참 많이 읽었었다. 그 친구가 읽는 책을 같이 읽고, 책 얘기를 하는게 참 좋았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그 친구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학교 생활, 취업 준비, 그리고 취업... 생활이 바빠서 예전만큼 여유가 없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책을 함께 읽고 감상을 공유하던 친구가 없어졌다는게 못내 서운했다. 언제쯤 친구가 다시 책 읽기를 즐길만큼 여유를 가지게 될까? 아니 책 읽기는 그저 나만의 취미로 남겨진 것일까?   

 

변한 것은 책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케이크 사먹을 돈을 절약했던 소녀는 집을 떠나 사랑을 알고, 그 후에 이어진 아름답지 못한 결말도 배우고, 친구를 잃고 또 새롭게 얻고, 예전에 알던 것보다 더 깊은 절망과 끝없는 희망을 알고, 잘되지 않는 것과 바라는 바를 간절히 기원하는 방법도 배우고, 하지만 어떤 노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게 있다는 사실을 매일 확인하고, 그렇게 내 안에서 조금씩 늘어나거나 줄어든 무언가가 바뀔 때마다 마주한 이 책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었던 것이다. (p.19)  

 

저자는 어린 시절에 읽고 무척 재미없다고 생각한 책을 커서 다시 읽고 엄청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책은 다름아닌 '어린 왕자'다!) 그 경험으로 인해 세상에는 나와 '맞는 책'. '안 맞는 책'만이 있을뿐 '시시한 책'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에 나와 맞는 인간, 안 맞는 인간은 있어도 '시시한 인간'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생각은 (비록 취미지만) 서평을 쓰는 사람으로서도 명심해야 할 점이다. 책을 읽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 책은 시시하고 재미 없는 책이 아니라 그저 '나와 안 맞는 책'일뿐이다. 그러니 무조건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비판하더라도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는지 분명히 명시를 해야 한다. (리뷰어도 책임이 막중하다!) 안 그러면 서평을 읽은 사람이 서평만 믿고 아예 그 책과 만나지(그 책을 읽지) 못할 수도 있다.  

 

읽은 사람도 책이 재미없더라도 '안 맞는 책이었다', '아직 이 책을 읽을 때가 아닌가 보다'라는 식으로 넓은 마음을 가진다면 좋은 책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다. 사람이 저마다의 이유를 안고 태어나는 것처럼, 책 한권 한권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