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탐닉
세노 갓파 지음, 송수진 옮김 / 씨네21북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일본의 무대미술가 세노 갓파(본명은 세노 하지메) 특유의 꼼꼼하고 치밀한 펜화 일러스트와 에세이로 구성된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마치 건축 조감도를 보는 것처럼 공간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고 치밀하게 표현하는 그의 작업은 언뜻 괴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터뷰이 중에는 정밀한 묘사를 하는 것이라면 굳이 그림으로 그리지 않고 사진으로 남겨도 되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한 사람도 있었다. 확실히 정확한 묘사를 위한 것이라면 그림보다는 사진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넓은 공간의 작은 부속품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재현해내는 정성과 노력, 그리고 아무렇게나 놓인 사물 하나에도 시선을 흐트리지 않는 호기심 등 기계가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한 감정과 인간적인 고뇌가 담겨있다. 아마도 그것이 갓파의 작업에 일본인이 열광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설국'의 카와바타 야스나리, 디자이너 미야케 이세이, 작가 타치바나 타카시, 각본가 쿠라모토 소,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 등 이름만 들어도 탄성이 절로 나오는 인물들의 작업실을 볼 수 있는 것도 재미다. 참고로 세노 갓파는 본업인 무대미술가 외에도 그래픽 디자이너, 에세이스트,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등으로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갓파가 엿본 일본', '갓파가 엿본 유럽' 등 일명 '엿보기'시리즈로 유명해진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고(빌브라이슨이 생각난다), 자전적인 소설 '소년H'가 상,하권 합쳐 총 300만부 이상 팔리는 등 소설가로서의 재능도 인정받았다. 여러가지 일을 잘 하면 하나도 제대로 못 한다는 말이 있지만, 세노 갓파는 예외인가 보다.

 

 

이 책은 특히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볼만하다. 일본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나는 코미디언을 주로 양성하는 일본 굴지의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 '요시모토흥업'의 회장실 편이 재미있었다. '매니저는 연예계와 관계없는 대졸자로 채용한다', '아침 7시에 제일 먼저 출근한다', '자사 탤런트가 출연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전부 챙겨 본다' 등 1991년 타계한 故 하야시 쇼노스케 회장의 경영 철학을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려) 일본 최고의 코미디언인 아카시야 산마의 코멘트까지 실려 있어 금상첨화였다. 후지테레비 프로듀서 요코자와 타케시의 스튜디오 편에서는 일본의 인기 프로그램 '와랏떼이이토모(웃으면 좋고 말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1982년 10월에 처음 방영된 '이이토모'는 2010년 현재까지 평일 낮 12시부터 1시까지 생방송으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으며, 나도 여러번 본 적이 있다. 방영 초기에는 방송국 내에서조차 "지금이 웃을 때야?"라는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고, 진행자인 타모리 씨는 낮방송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유행을 간파할 줄 아는 프로듀서의 역량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이이토모'가 30년 가까이 장수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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