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날들 -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시간
김신회 지음 / 웅진윙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가장 보통의 날들>의 저자 김신회는 일 년에 아홉 달쯤 일하고 석 달은 여행을 떠나는 방송작가다. 일 년의 반의 반을 외국에서 보내는 삶.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용기와 호기심이 너무나도 멋지고 부럽다.

 

 

이 책은 유명 관광지나 고적보다는, 현지인들의 일상을 관찰하거나 몸을 부대끼고 말을 섞으면서 느낀 점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시칠리아의 최고 매력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준 택시 아저씨, '마(엄마)'라고 불릴 만큼 따뜻했던 방콕의 식당 할머니 등 저자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게는 어떤 추억이 있었나 하나 하나 떠올려보는 즐거움이 있었다.방송작가 특유의 통통튀고 감성적인 글과 예쁜 삽화는 중간고사 기간 동안 전공서에 지쳐있던 심신을 편안히 해주기에 충분했다. 이 책에서 내가 유일하게 가본 곳, 도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시부야 스크럼블 교차로의 사진이 나왔을 때는 이미 내 마음이 시부야 역의 복잡한 개찰구를 빠져나와 맞닥뜨렸던 그 풍경 앞으로 가있는 듯 했다.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도쿄 여행 둘째 날 시모키타자와에서 실컷 구경을 하고 난 다음, 나와 동생은 어느 허름한 주택가 골목 계단에 주저 앉아 저녁 대신 안젤리카에서 산 카레빵을 먹었다. 도둑 고양이처럼 오물오물 카레빵을 먹으면서,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시모키타자와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 거라??본의 홍대 앞'이라고 불릴 만큼 예쁘고 아기자기한 가게가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대학가 주변이고 작은 극단이 많아서 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은 젊은이들이 주로 서식하는(?) 곳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먹었던 몇 백 엔짜리 카레빵과 허름한 골목 어귀야말로 '진짜 시모키타자와'의 모습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단순하고 사소한 즐거움이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가장 보통의 날들'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떠났다고 해서 뭔가 독특하고 귀하고 값비싼 것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나다운 것, 그래서 즐겁고 편안하고 행복한 것을 느끼는 것. 그것이야말로 '길 위에서 비로소 나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껴안'을 수 있는 경지의 여행이 아닐까..

 

 

골목이 아름다운 베네치아에서는 지도가 없어야 좋아. 베네치아의 중앙 역, 산타루치아에 도착해서 네가 제일 먼저 할 일은 길을 잃는 것. 그때부터 너는 진짜 베네치아를 보게 될 거야. 햇살이 비치는 베란다에 가지런히 널어둔 빨래와 창가의 조그만 화분을 구경하고 골목대장 고양이들과 눈을 맞추며 걷다가 경쾌하게 휘파람을 불며 과일을 파는 시장 아저씨에게 딸기를 사고 조그만 피체리아에서 조각피자를 사들고 이어지는 또 한 번의 산책.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렇게 가보고 싶던 리알토다리가 네 앞에 서 있고, 베네치아의 비둘기들이 모이는 산마르코광장도 나타날 거야. (p.55 지도 없이 걷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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