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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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남편과 나는 드디어 책을 한데 섞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안 지 10년, 함께 산 지 6년, 결혼한 지 5년 된 사이였다. 이제 우리의 어울리지 않는 커피 잔들도 우호적으로 공존하게 되었다. 우리는 티셔츠도 바꾸어 입고, 여차 하면 서로의 양말을 갖다 신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책들은 계속 별거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내 책은 주로 우리 아파트 북쪽 끝에, 그의 책은 남쪽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의 <빌리 버드>가 그의 <모비 딕>으로부터 10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시름에 잠겨 있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데 일찌감치 합의를 했건만, 실제로 둘을 합쳐 주는 일에는 우리 둘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았다. (p.17)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는 저마다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법한 책에 얽힌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다. 저자는 '패디먼' 대학팀의 일원으로 텔레비전 퀴즈쇼에 열을 올렸던 어린 시절부터 서재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를 두고 남편과 신경전을 벌이는 현재의 결혼생활에 이르기까지 책을 둘러싼 자전적인 일화들을 책에 담았다. 

 


생각해보니 책과 나의 인연도 예사롭지 않다. 증조 할아버지는 마을 훈장님이셨고, 아버지는 가정형편상 공대에 진학했지만 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고, 나와 동생이 어렸을 때는 매달 월급날마다 회사 구내서점에서 책을 사다가 선물해주셨다. 외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인쇄업에 종사하셨고,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잠깐 출판사 외판원 일을 하신 적이 있다. 실적을 올리려고 자비로 사들이신 책 덕분에 한동안 우리집은 도서관 부럽잖은 장서량을 자랑했었다. 그 덕분에 내가 지금도 책을 즐겨 읽고, 동생이나 나나 공부를 잘 하지 않았나 싶다.     


책 읽기에 조금이라도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자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수시로 ‘내게는 어떤 추억이 있었더라?’ 하고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내가 앞에서 구차하게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증조 할아버지까지 언급해가며 책과 나의 인연을 강조한 것처럼 말이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은 지식을 쌓고 재미를 얻기 위해 읽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책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인 사람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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