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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신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0
손보미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월
평점 :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C, 즉 선택을 만드는 건 때때로 우연이고, 우연에 의한 선택은 우리를 우리 자신도 상상하지 못한 장소로 우리를 데려 간다. 소설가 손보미가 2019년에 발표한 책 <우연의 신>의 내용도 그렇다. 경찰대 졸업 후 경찰청에 근무하다 현재는 민간 조사원으로 일하며 남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그'는 매년 한 번씩 떠나는 휴가를 앞두고 낯선 의뢰인에게 어떤 제안을 받는다. 휴가를 목숨처럼 중요시하는 '그'인지라 의뢰인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든 감정에 이끌려 제안을 받아들이고 만다.
한편 뉴욕의 한 아트 에이전시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는 학창 시절 자신을 싫어했던 친구 '알리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 앞으로 유품을 남겼다는 연락을 받는다. 대체 왜 자신에게 유품을 남겼는지, 그 유품이 무엇인지 궁금해진 그녀는 함께 사는 개를 이웃에게 맡기고 친구의 어머니가 있는 프랑스 리옹으로 떠난다. 리옹에는 의뢰인의 제안으로 세상에 단 한 병만이 남아 있는 '최후의 조니워커 화이트 라벨'을 찾으러 온 '그'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며칠을 기다려 자신이 찾는 '화이트 라벨'의 새로운 주인이 '그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정체와 본심을 숨기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와 '그녀'는 각각 서울과 뉴욕에서 이 정도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사실 내면에는 좀처럼 걷어내기 힘든 권태와 우울을 안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일 년에 단 한 번 자신을 '리프레시'하기 위해 떠나는 휴가에 그토록 집착하고, '그녀'가 함께 사는 개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개가 정말 행복한지 걱정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런 두 사람이 연속된 우연의 작용으로 리옹에서 만나 즉흥적으로 파리로 떠나는 과정을 보면서, 어쩌면 이들은 '최후의 조니워커'를 만나기 위해 여기에 온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후의 조니워커'라는 핑계가 필요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지금처럼 살기 위해 그동안 엄청난 노력을 했을 텐데, 가장 원하는 것이 지금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니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있을까. 이 소설에도 등장하고 손보미 작가의 소설집 <맨해튼의 반딧불이>에 실린 연작의 제목이기도 한 '분실물 찾기의 대가'라는 말에서 '분실물'은 어쩌면 각자의 인생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우연의 신>은 <맨해튼의 반딧불이>에 실린 단편 <최후의 조니워커>를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 <맨해튼의 반딧불이>를 읽고 쓴 리뷰에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탐정 소설'이라고 썼는데, <우연의 신>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