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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지음, 정해영 옮김, 신형철 해제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을까, 그렇지 않을까. 애초에 운명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1897년생 미국 작가 손턴 와일더가 1927년에 발표한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왜 어떤 사람은 오늘 생을 마감하고 어떤 사람은 내일도 사는지, 그것을 정하는 것이 운명인지 우연인지 질문하며 시작한다.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로 불리는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무너지며 다섯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우연히 사고를 목격한 주니퍼 수사는 자칫하면 자신이 죽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들의 죽음이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신의 의도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망한 다섯 명 각각의 사연을 알아 보아야 했다. 사망한 사람은 스페인으로 시집 간 딸을 그리워했던 어머니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과 그의 하녀 페피타, 쌍둥이 형제를 잃고 괴로워 하던 청년 에스테반, 왕의 정부가 된 여배우의 스승이었던 피오 아저씨, 그리고 그녀의 아들 하이메다.
주니퍼 수사는 각각의 사연을 조사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참 기구하고 특별한 인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들은 살면서 늘 착한 행동만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쁜 행동만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들의 죽음은 선행에 대한 보상도 아니고 악행에 대한 징벌도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이들이 한날한시에 같은 장소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오로지 우연의 작용이란 말인가. 우연에 의해 죽을 수도 있고 우연에 의해 살 수도 있다면, 대체 인간은 무엇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런 고민 끝에 주니퍼 수사는 중요한 건 이들이 운명 때문에 죽었는지 우연 때문에 죽었는지가 아니라, 이들이 결국 사는 동안 자신들이 행했던 '사랑'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은 사는 동안 많은 부와 명예를 가졌지만 사람들은 그를 딸에게 집착적인 사랑을 보였으나 끝내 보답 받지 못한 불쌍한 어머니로 기억했다. 에스테반은 한몸처럼 아꼈던 쌍둥이 형제가 죽은 후 슬픔에 빠져 지낸 존재로, 피오 아저씨는 제자를 딸처럼 사랑했던 스승으로 기억했다. 그 결과가 이별이든 배신이든 사람들은 그가 사는 동안 했던 사랑으로 그를 기억했다. 결국 사랑이다. 사랑만이 남는다. 그러니까 운명이나 우연에 대해 생각할 시간에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하라고, 아니 사랑을 하라고 말하는 소설이다.